대만 폭스콘의 개방형 전기차 플랫폼(전기차 전용 뼈대) ‘MIH’. 폭스콘 누리집 캡처
“삼성과 엘지(LG)는 왜 전기차 안 만들어요?”
지난달 일본 전자업체 소니가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자 국내에서 이런 반응이 제기됐다. 근거가 있다.
우선 외국 경쟁업체들의 전기차 사업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소니는 물론 스마트폰을 만드는 미국 애플, 중국 샤오미, 화웨이 등도 전기차 제조를 추진 중이다. 전기차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보고 뛰어들고 있다.
자동차 산업 문턱도 예전만큼 높지 않다.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 등이 사라지며 부품 구성이 단순해진 데다, 외부 전문업체에 전기차 생산을 위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애플 아이폰을 수탁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며 고객사 전기차를 대신 만들어주겠다고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소니가 지난달 선보인 새로운 전기차 콘셉트카(맛보기 차) 역시, 엘지전자와 지난해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 전달 장치) 합작사를 세운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사 캐나다 마그나가 만들어준 차량이다.
특히 엘지는 ‘자동차를 가장 잘 아는 기업’이라고 자처하고 있을 만큼 전기차 기술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엘지전자와 그룹 계열사는 전기 모터, 배터리, 차량용 통신 모듈,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볼트 생산 원가에서 엘지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 사실상 ‘엘지 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 역시 2017년 자동차 전자장치 전문업체인 미국 하만을 9조여원에 인수하고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등 차 부품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삼성은 1993년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이듬해 삼성중공업이 자체 기술로 기획·설계·제작한 순수 전기차 ‘SEV-III’를 선보인 전례도 있다. 납축전지 28개를 탑재해 배터리 완충 뒤 주행거리가 180㎞, 최고 시속은 130㎞인 차량이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완성차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여기엔 자동차 직접 생산보다 완성차 업체들을 상대로 한 부품 공급이 훨씬 이익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기차 시장에 직접 선수로 뛰어들어봤자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만약 삼성과 엘지가 전기차 자체 생산에 나서면 완성차 업체가 경쟁자로 인식해 부품 수급을 끊을 가능성도 크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을 만들고 반도체 수탁 생산 세계 1위에 오른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전략과 비슷하다.
대형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이 전기차 사업 진출을 번복하는 것처럼 실제 안전 법규를 지키며 일정 수준 이상 품질을 갖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판매하고 사후 관리까지 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