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항 관제소와 항공기 사이 착륙 유도 신호 송수신용으로 쓰이는 전파와 5세대(5G) 이동통신 전파의 주파수 대역이 인접해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와 일부 항공편이 취소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도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추가 할당 예정인 주파수 대역이 공항에서 관제용으로 쓰고 있는 주파수 대역과 인접해 항공기 안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사전 점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공항의 항공기 관제 주파수와 5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간에 간섭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미 항공당국의 진단 결과를 전달받고 국토교통부와 이 문제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항공기가 미국 공항에 착륙할 때 안전 문제가 없는지와 국내 공항에선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를 살펴 대응하기 위해서다.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사들의 요청을 받아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추가 할당을 추진 중인 3.7㎓ 이상 대역 주파수가 공항에서 사용 중인 전파와 충돌하지 않는지도 함께 점검 중이다.
에이피(A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 항공당국은 5세대 이동통신 전파 간섭으로 항공기 고도계가 오류를 일으켜 착륙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지난해 말 내놨다. 이에 두바이 에미레이츠, 독일 루프트한자, 인도 에어인디아 등 전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미국 노선 항공편 일부를 취소·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한항공도 미국 노선 항공기를 다른 기종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외신 보도와 정부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주파수 간섭 논란은 미국서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할당된 시-대역(C-Band) 주파수 때문에 발생했다. 시-대역은 3.70~4.20㎓ 대역을 말한다. 이 대역은 항공기에 달린 고도계 센서가 지표면과의 높이를 측정한 데이터를 공항의 항공기 관제장비와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전파의 주파수 대역(4.20~4.40㎓)과 인접해 있다. 주파수 대역이 인접하거나 겹치면 상대 전파를 왜곡시키거나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 항공업계는 “왜곡이나 간섭이 발생하면 주고받는 데이터에 오류가 발생해 엉뚱한 수치가 전달되는 등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이 지난해 이동통신사에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한 주파수에는 3.70~3.92㎓ 대역도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은 3.80㎓ 이하 대역을 할당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은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3.42∼3.70㎓ 대역을 쓰고 있다. 미국에서만 유독 5세대 이동통신 전파 간섭에 따른 항공기 안전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일각에선 간섭 전파 거름(필터링) 기능을 가진 최신 항공기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파수 왜곡·간섭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고도계가 전파 수신을 할 때 간섭 전파 필터링을 해야 하는데, 노후 항공기에 탑재된 고도계에는 이런 기능이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안전 논란이 제기된 항공기 기종이라도 ‘록웰 콜린스’ 고도계(LRA-900, 2100)를 장착했으면 공항 착륙을 허용한다고 항공사 쪽에 공지했다. 대한항공은 “미 연방항공청 지침에 따라 보잉777과 보잉747-800 항공기도 미국 공항 착륙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여객기와 화물기 모두 미국 노선을 정상 운항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대한항공은 전파 간섭에 따른 항공기 안전 문제를 들어 미국 노선에 다른 기종의 항공기를 투입했었다.
5세대 이동통신용과 공항용 전파 간 간섭은 아직 국내에선 발생한 사례가 없다. 과기정통부는 미 공항에서의 전파 간섭 논란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지난 3일 설명자료를 내어 “우리나라 5세대 이동통신 주파수는 3.42~3.70㎓ 대역으로 공항에서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500㎒(메가헤르츠) 이상 벌어져 있다”며 “2019년 4월 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이후 간섭 발생 보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5세대 이동통신용 주파수 대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에 3.70㎓ 이상 대역을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국에선 사전에 간섭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시-대역 주파수를 할당한 문제가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해당 대역 주파수 할당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사전 검증을 충분히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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