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보트 래버러토리의 코로나19 신속 진단 키트 ‘바이낙스나우’
지난 14일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코로나19 가정용 신속 진단 키트 ‘바이낙스나우’를 써봤다. 미국 월마트 판매가는 개당 20달러인데, 온라인에선 3배 가까운 웃돈을 줘야 구할 수 있다는 제품이다.
성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종이 상자를 여니 비닐 파우치 2개가 들어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상자 안에 있는 면봉을 양쪽 콧구멍 속으로 2㎝ 정도 넣어 돌리는 방식으로 검체를 채취한 뒤 파우치 속 검사지에 시약과 함께 넣으면 15분 뒤 결과가 나온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자 검사지 겉에 보라색 줄 하나가 나타났다. 코로나 ‘음성’(비감염)이다.
지난 4~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2022 시이에스(CES)’의 주인공은 첨단 기술을 과시한 대형 기술기업 뿐만이 아니었다. 이 간편 진단키트를 만든 미국 헬스케어(건강 관리) 기업 ‘애보트 래버러토리’ 역시 주인공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로버트 포드 애보트 최고경영자(CEO)는 헬스케어 기업 경영자로는 처음으로 시이에스 기조 연설자로 초청됐다. 이번 전시회 첫 기조 연설자로 나선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받은 셈이다. 행사 주최 측은 취재진 등 관련 행사 참석자 모두에게 애보트의 간편 진단키트를 나눠줬다. 또한 시이에스 행사장 곳곳에서 애보트의 대형 홍보물을 볼 수 있었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애보트는 미국 의료기기 시장점유율 3위 대기업”이라며 “최근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로 인지도가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2 시이에스(CES)’ 전시장 입구 벽면에 애보트의 홍보물이 붙어있다. 라스베이거스/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애보트는 의료·제약 부문에서 13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회사다. 1888년 약국을 운영하며 최초로 알약을 개발한 월러스 캘빈 애보트 박사가 1894년 설립한 애보트 칼로이달 컴퍼니가 모태다. 1929년 미국 대공황 때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2차 세계대전 때 마취제와 항생제를 팔며 급성장했다.
미국의 주요 의료기업답게 재무와 실적이 탄탄하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애보트의 총자산은 88조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 회사 주식의 시가총액은 265조원에 이른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 시총의 약 3배다. 지난해 1∼9월 올린 순이익만 약 6조원, 회사가 쥐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도 10조원이 넘는다. ‘현금 부자’인 셈이다.
애보트는 요즘 미국에서 ‘진단키트 대장주’로 여겨진다. 애보트 진단사업부 매출액은 2019년 77억달러(9조2천억원)에서 2020년 108억달러(12조9천억원)로 40% 증가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 진단키트 판매에 힘입어 전년의 10배가 넘는 1조2천억의 매출을 기록한 한국의 유전자 분석·진단 기업 씨젠과 비슷하다.
브렛 지로어 미국 보건복지부 차관보는 “(애보트의 진단 장비는) 코로나19 사태의 판도를 바꿔줄 게임 체인저”라고 평가했다. 항원 검사 방식인 애보트의 바이낙스나우는 유전자증폭(PCR) 검사보다 정확도가 낮지만, 비용은 훨씬 저렴하다. 검사 빈도를 늘려 정확성을 보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 4개 중 3개가 애보트 제품이다. 회사 쪽은 1월에만 7천만개 가량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눈에 띄는 점은 미국 진단키트 대장주 애보트의 주가가 한국 진단키트 대장주 씨젠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거다. 앞서 2020년 10월 실적 폭풍 성장 기대감에 주당 15만원(이하 무상 증자 반영한 수정주가 기준)선까지 치솟았던 씨젠 주가는 지난 21일 주당 6만200원에 장을 마쳤다. 반면 애보트 주가는 코로나19 대유행 발생 이전 주당 80달러 내외에서 2020년 7월 주당 100달러로 오른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140달러를 돌파했고, 요즘은 120달러 선에서 횡보하고 있다.
김 수석연구원은 “씨젠 등 국내 진단 기업은 코로나19 관련 매출액이 전체 매출의 70∼90%를 차지할 만큼 의존도가 높지만, 애보트는 코로나19 진단을 포함한 전체 진단사업부 매출 비중이 40% 미만”이라며 “애보트의 경우, 코로나19 진단뿐 아니라 의료기기, 식품, 의약품 등 사업이 다각화돼 있는 게 국내 기업과 가장 큰 차이”라고 짚었다.
애보트는 심혈관·당뇨 분야 의료기기와 코로나19 이외 진단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영양제와 복제약 판매가 실적을 뒷받침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이 잠잠해져도 이익이 급격히 줄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애보트가 개발 중인 신제품 ‘링고’. 애보트 제공
애보트가 올해 시이에스에서 집중 조명을 받은 이유도 이처럼 다각화한 사업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포드 최고경영자는 시이에스 기조연설에서 “기술이 의료를 디지털화, 분산화, 민주화할 것”이라며 신제품 ‘링고’를 소개했다. 작은 바늘이 달린 동전 크기 센서를 팔에 붙이면, 혈당·케톤·젖산 등의 수치를 이용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이어트 기간 자신의 케톤 수치를 모니터링하거나 술 마신 다음날 운전대를 잡기 전 혈중 알코올 농도를 체크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할 것으로 회사 쪽은 기대했다.
이 제품은 애보트가 당뇨병 환자를 위해 만든 혈당 수치 측정 의료기기 ‘프리스타일 리브레’에 적용했던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사람의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신체 정보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건강 관리와 원격 진료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신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