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ESS)가 설치될 예정이었던 새만금 육상태양광 내 약 1만평 규모의 부지가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최근 상업 발전에 들어간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시설 ‘새만금 육상태양광’이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없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저장장치 없는 태양광 발전시설은 해가 없는 시간에는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 점에서 애초 목표로 삼은 ‘지역 에너지 자급자족’ 실현이 불가능한 ‘반쪽짜리’란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라북도 군산시 새만금북로 일대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시설은 에너지저장장치가 갖춰지지 않아 생산된 전력이 바로 발전업체로 직공급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애초 에너지저장장치가 구축될 예정이었던 1만평 규모의 부지는 허허벌판으로 남겨져 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태양전지가 생산한 전력을 충전 방식으로 저장해뒀다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설비다. 해가 있을 때만 전력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의 필수 보완시설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위도가 높아 태양전지 효율이 낮다. 태양광 발전 업계에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 전력이 생산되는 시간은 평균 4시간도 채 안된다. 햇빛이 강한 시간대에는 전력이 남아돌고, 나머지 시간대는 부족하게 된다. 들쭉날쭉한 전력 공급은 송전탑 등 관련 장비에 부담을 주기도 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바로 에너지저장장치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에스에스는 전력 공급의 변동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장치가 없으면 전력 수급이 안정적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에너지저장장치가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 탓이 크다. 정부는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권장해왔다. 공급의무화는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수자원공사 등 500메가와트 이상의 발전설비를 소유한 회사에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공급을 의무화한 제도다. 발전사들은 이 제도에 따라 올해 총 발전량의 12.5%를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발전사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량을 채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는 발전사들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아르이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구입을 통해 의무공급을 충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일종의 ‘탄소배출권’인 셈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는 발전시설 용량에 따라 지급되는 아르이시를 시장(발전사)에 팔아 얻을 수 있는 수익까지 살펴 사업을 진행한다. 발전시설 운용으로 아르이시를 얼마나 받는지, 시장에서 아르이시가 얼마에 거래되는지가 수익성을 크게 좌우하는 셈이다.
새만금 육상태양광 사업 공모가 진행되던 2019년 말에는 에너지저장장치 연계 태양광 사업의 아르이시 가중치가 최대 5(5배)까지 부여됐다. 에너지저장장치가 없는 태양광 발전의 가중치는 최대 1.5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에너지저장장치 연계 태양광 사업 인센티브가 상당히 컸다. 하지만 2020년 말 정부는 “2021년부터 에너지저장장치 연계 태양광 발전시설에 부여하던 가중치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후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설비 구축 사업을 맡은 특수목적법인(SPC)들이 비용 부담 증가와 수익성을 이유로 에너지저장장치 구축을 접었다.
새만금개발공사가 새만금 육상태양광 사업자(특수목적법인)들과 허술한 계약을 맺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만금 육상태양광 사업자 공모 당시, 참여업체들이 에너지저장장치 설비에 대해 ‘설치할 수 있다’라고 가능성만 명시한 계약서를 새만금개발공사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 사업임에도 사업자 공모 단계에서 에너지저장장치 의무화 조건을 달지 않은 것이다. 새만금개발공사는 이와 관련해 <한겨레>에 “사업자로부터 ‘육상태양광은 발전소로 전력을 바로 보낼 수 있는 조건이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전달받았다”라고 밝혔다. 새만금개발청은 “에너지저장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나중에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업체 쪽에선 정부가 없앤 아르이시 가중치를 회복시키지 않는 이상 에너지저장장치 설비 설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일축한다. 더욱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아르이시 가격도 새만금 육상태양광 사업 추진 시작 당시 6만원대에서 지금은 4만원대로 떨어진 상태이다. 한 참여업체 관계자(익명 요청)는 “아르이시 가중치 상향 조정 없이는 에너지저장장치 구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새만금/글·사진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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