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건설 계열사 현대엔지니어링이 내년 2월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두고
본격적인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상장 배경과 공모주 가격에 시장과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상장을 통해 보유 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키로 해서다.
특히 공모가 적정성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뚜렷하게 갈린다. 정 회장 입장에선 공모주 가격이 비쌀수록 유리하다. 주식을 팔아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어서다. 반면 공모주에 투자하는 일반인은 주식을 한 푼이라도 싸게 사길 바란다.
■상징 배경은? 현대엔지니어링은 애초 ‘현금 부자’ 기업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보유 현금에서 빌린 돈을 뺀 순현금이 올해 9월말 현재 1조8천억원에 이른다. 회사를 상장해 외부에서 투자금을 끌어올 유인이 작다는 의미다. 여느 기업과는 다른 상장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 쪽은 상장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업 공개(상장)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장 내용은 회사 설명과 거리가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장에 내놓는 공모주 물량은 총 1600만주다. 이중 75%인 1200만주는 엔지니어링의 기존 주주들이 처분하는 주식 물량이다. 기존 주주 중에선 2대 주주인 정의선 회장이 매각하는 주식이 534만주로 가장 많다.
회사 쪽이 제시한 공모주 가격은 주당 5만7900∼7만5700원이다. 공모가 최고액 기준 정 회장이 상장 과정에서 얻는 돈은 4044억원에 이른다. 반면 엔지니어링이 신주 400만주를 발행해 마련하는 자금은 이보다 적은 약 3천억원에 불과하다. 자금 조달이 아니라 기존 주주의 현금 마련용 상장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시장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의 진짜 상장 목적이 정 회장의 지분 승계 자금 마련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작지 않다.
■공모가 산정은 적절? 이런 의구심은 회사 쪽의 공모가 산정 대목에서 좀더 커진다. 공모가격 계산 때 시장에서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세계 최상위권 건설·엔지니어링 업체를 대거 포함했기 때문이다. 공모가가 높을수록 정 회장은 유리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상대 가치 평가 방법을 사용했다. 국내·외 상장 건설사에 매겨진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회사 몸값을 산출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비교 대상 회사들의 기업 가치가 1년치 현금성 영업이익의 몇 배인지 계산한 뒤, 그 배수를 엔지니어링 이익에 적용해 기업 가치를 구했다. 이같이 계산한 현대엔지니어링의 적정 시가총액은 약 7조원. 모기업인 현대건설(시총 5조5천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비교 대상으로 가져다 쓴 건 대우건설·지에스(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건설사 3곳과 국외 건설사 9곳이다. 눈에 띄는 건 국외 건설사 쪽이다. 미국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 ‘엔지니어링 뉴스 레코드’(ENR)가 발표하는 글로벌 설계·도급회사 국외 매출액(올해 기준) 순위 수위권에 속하는 기업들이 많이 반영됐다.
예를 들어 세계 1∼3위 엔지니어링 회사인 캐나다 WSP글로벌, 호주 월리 파슨스, 미국 에이콤 등이 일제히 비교 대상에 들어갔다. 도급 순위 세계 3위인 프랑스 방시나 12위인 미국 플루어도 명단에 포함됐다. 이에 반해 ENR 순위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은 도급 분야만 38위이고 설계 쪽은 100위권 밖이다.
국외 건설 시장에 밝은 건설 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내 건설사는 설계·조달·시공(EPC)을 주력으로 하지만, 외국 대형 건설사는 단순 시공은 다른 회사에 맡기고 국외 정부로부터 따온 인프라 개발 사업(양허 사업)에 참여해 부가가치가 높은 운용·관리 수익을 얻는 등 사업 구조가 크게 다르다”면서 “한국 기업은 중국 건설사와 비교하는 게 사업 구조상 좀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런 국외 건설사는 국내 건설사보다 몸값(현금성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 배수)이 많게는 7배 가까이 높아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 가치와 공모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금 부자인 엔지니어링의 재무 특수성도 공모가 상승에 도움이 됐다. 통상 기업 가치는 주주의 몫인 시가총액과 채권자 몫인 순차입금을 더해서 계산하는데, 차입금이 마이너스(-)이면 반대로 시총은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적정 시총 4조원도 많다?물론 일부 증권 전문가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후 시가총액을 최대 10조원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의선 회장이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해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가치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이 국내 아파트 분양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폐기물 업체 인수 등에 나선 것도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국내 건설 대장주인 모회사 현대건설 시가총액이 5조∼6조원을 오가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링의 적정 가치는 넉넉히 계산해도 4조원 이상이 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다”고 짚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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