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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재벌 기업 ‘2인자’, 관심 여전한데 왜 존재감 흐려졌을까

등록 2021-12-10 11:42수정 2021-12-10 21:45

“투명경영 요구 강해지고, 계열사 중심 경영 흐름”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재벌 기업의 정기인사 때마다 집중 관심 대목 중 하나는 2인자 자리의 향배다. 그룹 총수를 정점으로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띤 재벌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재벌 기업들이 국내 경제 전반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있다.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체제로 무게추가 조금씩 옮아가고 있다 해도 총수 중심의 작동 방식은 그대로다. 기업 권력의 동심원 중심에서 가까운 지점일수록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그룹의 2022년 사장단 정기인사의 출발을 알린 지난달 25일 엘지(LG)그룹 인사에선 2인자 자리의 주인공이 바뀌었고, 이달 7일 발표된 삼성그룹 인사에선 2인자로 일컬어지는 이가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권봉석 (주)LG 부회장
권봉석 (주)LG 부회장

엘지그룹의 2인자 자리로 꼽히는 지주회사 ㈜엘지 대표 자리는 권영수 부회장에서 권봉석 부회장으로 바뀌었다. 구광모 그룹 회장과 함께 지주회사의 각자 대표를 맡는 형태다. 권영수 부회장은 엘지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겼다. 권봉석 부회장은 엘지전자 사장에서 승진·이동했다.

삼성전자 인사에서는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며 그룹 전체에서 2인자로 평가받는 정현호 사장(사업지원TF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회사의 3개 사업 부문이 2개 부문으로 재정비되고 부문장이 전면 교체되는 와중에 이뤄진 승진 인사여서 눈길을 끌었다.

재벌 기업의 2인자 역사를 거론할 때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대개 맨 앞자리에 꼽힌다. 이 전 실장은 김인주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차장(사장)과 함께 창업자 2세(이건희 회장)에서 3세(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이 전 실장은 전형적인 재무통이었다. 승계 과정에서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같은 현란한 금융 기법이 동원된 것과 무관치 않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이 전 실장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만한 힘을 지닌 2인자는 없었다는 게 중평이다. 이 전 실장 이전의 삼성 창업자(이병철 회장) 회장 시절 총수의 지근거리에 오래 머물렀던 이는 소병해 전 비서실장이다. 이학수 전 실장의 뒤에서 바통을 물려받은 이는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이다. 지난 2017년 2월 해체된 미래전략실은 삼성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의 뒤를 잇는 그룹 지휘부(컨트롤타워)였다. 지금은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가 사실상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최 전 실장의 존재감은 이학수 전 실장에 견줘 훨씬 작았다. 그 아래 자리의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실권이 쥐어져 있다는 세간의 평이 나올 정도였다.

‘이재용 시대’의 삼성에서 2인자로 일컬어지는 정현호 부회장의 존재감도 이학수 전 실장에 견줄 바는 아니다. 3세 승계 과정이 사실상 마무리됐고, 4세 승계 포기를 선언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삼성그룹의 예에서 2인자 자리의 절정기는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국내 재계에서 삼성그룹과 쌍벽을 이뤄온 현대차그룹에선 2인자로 꼽히는 인물군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은 편이었다. 현대그룹 계열의 한 임원은 “삼성 쪽과 달리 지배주주 가문(창업자인 정주영 회장, 2세인 정몽구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자 시절의 옛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으로 나뉘었다.

에스케이(SK)그룹에선 손길승 전 회장이 2인자 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그룹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최종현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직후인 1998년 9월 그룹 회장을 맡아 2004년까지 일했다. 회장 재임 기간이 무려 6년에 이르렀으니 ‘바지 회장’이라 할 수 없었다.

현재 최태원 회장 체제의 에스케이그룹에서 2인자급으로는 그룹 경영 자문 및 지원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조대식 의장과, 에스케이스퀘어 대표 박정호 부회장이 꼽힌다. 조 의장은 2017년부터 에스케이그룹 최태원 회장을 보좌하는 전문경영인 중 최고 자리인 의장직을 맡고 있다. 에스케이스퀘어는 에스케이텔레콤에서 갈라져 나와 지난 11월 새로 출범한 반도체 주력 중간 지주회사이다. 그룹 최대 회사인 에스케이하이닉스, 에이디티(ADT)캡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등 16개 회사가 그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엘지그룹에서 권봉석 부회장 이전 2인자로 두드러졌던 이는 강유식 전 부회장이다. 엘지가 2003년 국내 주요 그룹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으로 양분돼 있던 그룹을 엘지와 지에스(GS)로 분리할 때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전 부회장이나 그 뒤를 잇는 이들 모두 삼성그룹 2인자에 견줘선 이른바 ‘가신’ 성격이 덜했고, 상대적으로 실무형이란 평이 많았다.

롯데그룹의 2인자로 꼽히던 이는 이인원, 황각규 전 부회장이다. 이인원 전 부회장은 현직 시절 그룹 창업자(신격호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다. 황각규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2세 신동빈 회장 체제에서 2인자로 떠올랐다가 지난해 8월 인사로 전격 퇴진했다.

그룹별 성격은 조금씩 달라도 전반적으로 2인자의 존재는 예전에 견줘 흐릿해졌다. 시대의 흐름과 무관치 않을 터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창업자 시대에서 멀어지고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으로 기업 운영 방식과 지배구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2인자의 역할이나 권한을 줄이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 모두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분석 전문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2인자의 위상 약화 배경으로 “전 세계 기업들이 수직적·계급적 조직을 수평적이고 유연한 ‘애자일’(민첩한) 조직으로 바꾸고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오 소장은 “총수의 복심을 읽고 전달하는 2인자의 존재와 역할이 여전히 잔존해 있긴 하나, 계열사 전문 경영인에게 실권을 많이 부여하고 있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가 “지배구조 투명성 요구가 강해지고 있는 것”을 배경으로 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불투명한 경영 체제일수록 2인자의 힘이 세진다. (총수) 대신 감옥에 간 2인자들이 많았지 않은가. 우스갯소리로 ‘훈장’(수감 경험)을 달아야 부회장으로 올라간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책임을 지는 만큼 그에 비례해 힘이 세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박 대표는 여기에 더해 “2인자로 힘이 너무 많이 쏠리는 바람에 부작용도 생겨났고, 그에 따른 학습 효과로 2인자의 권한을 줄이게 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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