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그룹 이찬의 부회장은 1954년생이다. 올해 만 67살에 이른 이 부회장이 삼천리 이사로 임원 자리에 오른 것은 1991년이었다. 기업의 ‘별’로 일컬어지는 자리에서만 30년 동안 일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기업분석 전문 기관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소장 오일선)가 9일 내놓은 ‘100대 기업 전문경영인 임원 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최장수 임원은 이찬의 부회장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1930~40년대생들이 임원진의 주류이던 상황에서 30대 나이에 임원에 발탁돼 당시로선 파격 인사로 여겨졌다. 이 부회장은 삼탄과 키데코(KIDECO) 최고경영자를 거쳐 2017년부터 삼천리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은 모두 상장회사이며 올해 3분기까지 거둔 매출액 기준이다. 오너(지배주주) 가문을 제외한 전문경영인 중 3분기 기준 대표이사 직함을 유지하고 있는 123명을 대상으로 삼았다. 외국 기업 경력을 제외하고 국내 회사에서 이사대우, 상무보 등으로 승진 또는 선임된 경우로 한정해 조사했다고 시엑스오연구소는 밝혔다.
임원 재직 기간 2위는 한화그룹 금춘수 총괄 부회장이다. 1952년생의 금 부회장은 1995년 2월 ㈜한화 이사보로 선임된 뒤 26년 동안 임원진에서 활약하고 있다. 1978년 입사해 그룹 경영기획실 사장, 한화차이나 사장 등을 역임하며 40년 넘게 한화그룹에 몸담고 있다.
에이치엠엠(HMM) 배재훈 사장이 뒤를 잇는다. 배 사장은 1983년 럭키금성상사(현 LX인터내셔널)에 입사해 1995년 12월 엘지(LG)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이사대우로 승진하며 처음 임원진 반열에 들었다. 엘지 계열 판토스 대표이사 등을 걸쳐 2019년 에이치엠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임원 경력만 26년에 이른다.
임병용 지에스(GS)건설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이 뒤이어 장수 임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검사 출신인 임 부회장은 1996년 12월 엘지텔레콤(현 엘지유플러스) 이사로 선임됐다. 지난 7일 삼성전자 인사 때 부회장에서 한 단계 오른 김기남 회장은 1997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1기가 디(D)램 개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사보급 연구위원으로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김 회장의 나이는 39살이었다. 최현만 회장은 1997년 7월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임원 자리에 올랐다. 미래에셋금융그룹 총수인 박현주 회장을 비롯해 1997년 당시 미래에셋을 만들고 키워낸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출신 8명 중 1명이다.
100대 기업에서 대표이사직을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는 이는 엘지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이다. 차 부회장은 2005년 엘지생활건강 사장 자리에 올라 17년째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그 이전 쌍용제지(현 쌍용C&B), 한국피앤지(P&G), 해태제과 사장 등을 맡았던 경력까지 포함하면 최고경영자 이력만 20년을 웃돈다. 2010년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메리츠증권 최희문 부회장, 디비(DB)손해보험 김정남 부회장도 장수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최 부회장은 골드만삭스, 삼성증권 임원을 지냈다. 김 부회장은 동부화재(현 디비손해보험)에서 임원을 거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오일선 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문경영인이 회장 직위까지 오르는 사례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대표 사례로는 김기남 삼성전자, 최현만 미레에셋증권, 권오갑 한국조선해양, 최정우 포스코, 한준호 삼천리 회장을 들 수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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