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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붉은 악마 뒤엔 하이텔이 있었다

등록 2021-01-05 09:32수정 2021-01-05 15:02

[시간의극장]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제27화 피시통신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케텔과 천리안, 그리고 나우누리와 유니텔.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의 세계가 도래하기 전, 많은 사람들에게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낸 네티즌들의 세계, 피시(PC)통신이 있었다. 한겨레 아카이브를 통해 대한민국 통신의 역사를 리뷰해 보았다. 해설 정지훈

‘노땅’ 이미지 강했던 천리안
이용자 가장 많았던 하이텔
젊은층 파고든 나우누리·유니텔

인터넷 세계 도래하기 전
새 문화 창출한 네티즌 세계
최고 흥행작은 ‘엽기적인 그녀’

대한민국의 피시통신은 천리안과 케텔로 시작되었다. 천리안은 1984년 5월에 ㈜한국데이터통신의 전자사서함 서비스로 출발하여, 1990년 1월에는 ‘피시서브’가 개통되고 1992년 12월 이들이 통합하여 천리안이 되었다. 하이텔은 1986년 11월1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한국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로 개통되어, 1989년 11월 케텔(KETEL) 서비스를 시작한 뒤 1991년 12월 한국통신과 합작으로 한국피시통신㈜을 설립하면서 1992년 7월에 명칭을 하이텔(HiTEL)로 변경하였다.

1993년 서울국제데이터베이스쇼에 출품된 데이콤의 ‘천리안’ 전시. 천리안은 피시서브와 함께 정보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해서, 당시 피시통신을 즐기던 사람들은 흔히 피박(유료서비스라 돈이 많이 든다는 의미로 붙인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1993년 서울국제데이터베이스쇼에 출품된 데이콤의 ‘천리안’ 전시. 천리안은 피시서브와 함께 정보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해서, 당시 피시통신을 즐기던 사람들은 흔히 피박(유료서비스라 돈이 많이 든다는 의미로 붙인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케텔 가입자가 컴퓨터 단말기로 케텔과 접속하고 있는 사진으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제공한 케텔은 공짜 서비스였을 뿐 아니라 피시가 없는 사람들에게 전용 단말기를 대여하기도 했다. 흔히 천리안/피시서브의 ‘피박’과 대치되는 별명으로 돈 없는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라는 의미를 담은 ‘개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정우 기자가 찍었다. 1990년 사진으로 추정된다.
케텔 가입자가 컴퓨터 단말기로 케텔과 접속하고 있는 사진으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제공한 케텔은 공짜 서비스였을 뿐 아니라 피시가 없는 사람들에게 전용 단말기를 대여하기도 했다. 흔히 천리안/피시서브의 ‘피박’과 대치되는 별명으로 돈 없는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라는 의미를 담은 ‘개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정우 기자가 찍었다. 1990년 사진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경제신문사에서는 컴퓨터 통신을 홍보하고 회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가입자들 중 추첨을 해 1200bps 모뎀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필자도 1989년 케텔 초기 가입자 중의 하나로 충정로에 있는 한국경제신문사 한켠에 있었던 피라미드 컴퓨터에서 직접 아이디를 뒤지고 등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피시통신은 1990년대 들어 급성장을 하면서 1994년에는 나우누리, 1996년에는 유니텔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피시통신의 대중화를 이끈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4대 서비스라고 지칭했는데, 한때 합쳐서 350만 가입자를 모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과 함께 큰 인기를 끈 피시통신 서비스 나우누리의 ‘언론비평 모임 메아리’의 시솝. 당시 피시통신 서비스에서는 동호회가 가장 큰 인기였는데, 이들을 시스템 오퍼레이터(system operator)의 약자인 시솝 또는 시삽이라고 불렀다. 장철규 기자가 1998년 찍었다.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과 함께 큰 인기를 끈 피시통신 서비스 나우누리의 ‘언론비평 모임 메아리’의 시솝. 당시 피시통신 서비스에서는 동호회가 가장 큰 인기였는데, 이들을 시스템 오퍼레이터(system operator)의 약자인 시솝 또는 시삽이라고 불렀다. 장철규 기자가 1998년 찍었다.

피시통신 4대 서비스 중 하나였던 유니텔은 사진과 같이 유니텔 통신 방송국도 운영했다. 1998년 6월 모습이다. 비교적 후발주자였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콘셉트로 많은 사용자들을 모았다. 김진수 기자가 찍었다.
피시통신 4대 서비스 중 하나였던 유니텔은 사진과 같이 유니텔 통신 방송국도 운영했다. 1998년 6월 모습이다. 비교적 후발주자였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콘셉트로 많은 사용자들을 모았다. 김진수 기자가 찍었다.

피시통신의 4대 서비스에는 나름의 이미지가 있었다. 천리안은 나이가 많은 ‘노땅’ 이미지가 강했고, 고급스러운 비즈니스 정보나 유료 서비스 등도 잘 운영이 되었다. 하이텔도 약간 올드한 이미지였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고, 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신생 서비스였던 나우누리와 유니텔은 젊은 학생들의 비중이 높았다.

피시통신 동호회는 아마추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프로의 대열에 들어서게 만드는 역할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분야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하이텔의 ‘블렉스’, 나우누리의 ‘SNP’ 등은 힙합 동호회로 당시 동호회원들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공유하면서 활동했는데, 현재 실제로 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블렉스의 가리온과 주석, SNP의 버벌진트, 휘성 등이 있다. 피시통신 동호회는 개인의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피시통신 동호회에서 시작하여 유명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휘성’. 그는 나우누리의 ‘SNP’라는 힙합 동호회 출신으로 동호회원들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공유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형 기자가 2003년 찍었다.
피시통신 동호회에서 시작하여 유명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휘성’. 그는 나우누리의 ‘SNP’라는 힙합 동호회 출신으로 동호회원들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공유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형 기자가 2003년 찍었다.

피시통신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아마도 전도연과 한석규가 주연을 맡았던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이 아닌가 싶다. 1997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피시통신을 통해 사랑의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로맨스 영화로, 작품 속에 나온 유니텔이 널리 홍보되어 사용자 수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피시통신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공전의 히트를 한 장윤현 감독의 영화 &lt;접속&gt;의 무대가 되었던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의 한 카페. 이 영화는 피시통신을 하는 장면이 영화의 주된 영상을 차지하는데, 당시 유니텔을 배경으로 촬영이 되었다. 강창광 기자가 2000년 찍었다.
피시통신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공전의 히트를 한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의 무대가 되었던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의 한 카페. 이 영화는 피시통신을 하는 장면이 영화의 주된 영상을 차지하는데, 당시 유니텔을 배경으로 촬영이 되었다. 강창광 기자가 2000년 찍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가 된 전도연의 2005년 모습. 정용일 기자가 찍었다.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던 배우였던 그녀는 영화 &lt;접속&gt;의 여주인공을 맡으면서 단숨에 최정상급 배우로 성장하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가 된 전도연의 2005년 모습. 정용일 기자가 찍었다.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던 배우였던 그녀는 영화 <접속>의 여주인공을 맡으면서 단숨에 최정상급 배우로 성장하였다.

소설 <퇴마록>과 <드래곤 라자>는 피시통신 문화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퇴마록>은 이후 출간이 되어 출판부수 1000만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드래곤 라자>는 대한민국에 판타지 소설 붐을 일으키며 1998년 12권의 대작 판타지 소설로 출간되었다. <퇴마록>은 1998년 영화로 탄생하여 화제를 모았다. <드래곤 라자>는 온라인 머드 게임으로도 만들어졌고, <한국방송>(KBS)에서 판타지 특급을 통하여 라디오극화도 진행되었다.

피시통신에서 시작된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은 <엽기적인 그녀>일 것이다. ‘견우 74’라는 아이디 필명을 가진 작가가 피시통신 나우누리의 유머난에 연재한 자전적 코미디 소설인 ‘엽기적인 그녀’는 피시통신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2000년 1월22일에 동명의 책이 출간되고, 2001년 곽재용 감독, 차태현과 전지현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로 개봉을 하였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르는 동아시아 지역에 두루 배급되며 영화 시장을 강타했다.

한겨레 1994년 12월29일치 7면에 실렸던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 지면 광고. 퇴마록은 피시통신과 출판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피시통신의 문화가 주류 산업으로 편입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피시통신 나우누리에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책도 출판되고 영화도 제작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이라는 슈퍼스타를 탄생시켰고, 동시에 중국과 아시아 전역에서 가히 신드롬급 흥행을 하였다. 베이징 왕푸징 거리의 디브이디(DVD) 판매점 유리창에 <엽기적인 그녀>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종근 기자가 2002년 찍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피시통신 동호회가 온라인 공간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세계와 접속해 영향력을 강화하는 사건도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 붉은 티셔츠를 입고 세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긴 붉은 악마 응원단의 출발도 피시통신 하이텔의 축구동아리였다. 1993년 시작된 이 동아리는 각 지방에서 직접 축구경기를 본 팬들이 그날 경기 결과를 신문이나 방송보다 빠르게 피시통신에 올리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하였는데, 국내의 프로축구를 활성화시키는 데 열정적이었던 동호회원들이 팀별 서포터스 활동을 하다가 1997년 국가대표 서포터스로 조직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선을 보였다. 특히 1997년 9월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열광적인 응원 열기가 티브이를 통해 전국으로 중계되면서 전국 규모의 응원 조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붉은 악마 역시 피시통신 동호회로 시작되었다. 사진은 수원 서포터스들의 열광적인 응원 장면으로 이들은 케이(K)리그의 흥행을 위해 매우 열정적인 활동을 하다가, 2002년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국가대표 응원단이 되었다.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붉은 악마 역시 피시통신 동호회로 시작되었다. 사진은 수원 서포터스들의 열광적인 응원 장면으로 이들은 케이(K)리그의 흥행을 위해 매우 열정적인 활동을 하다가, 2002년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국가대표 응원단이 되었다.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음반제작사를 통해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전통 미디어를 거쳐서 인기를 끌고 데뷔를 하였는데, 조피디(PD)는 이런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15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음대 1학년이었던 1998년 10월, 피시통신 나우누리 신인가수방에 친구의 권유로 MP3 음악 파일을 올렸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의 가사나 욕설 등으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평을 받으며 직접 제작자를 겸업한 정식앨범을 1999년 1월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최초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고도 50만장 이상 팔린 앨범이 되었다. 1999년 8월에 발표한 2집도 판매 1위에 등극하면서 ‘얼굴 없는 가수’ 조피디 신화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프로듀서로서도 역량과 안목을 보여주며 당시 무명 신인이었던 ‘이정현’과 ‘싸이’는 ‘조피디 인 스타덤 버전 2.0’에 발탁됨으로써 2000년과 2001년 최고의 신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미국 버클리 음대 재학 시절 피시통신을 통해 업로드한 MP3 파일 하나로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충격적인 데뷔를 한 조피디. 그는 이후 이정현과 싸이의 프로듀싱도 맡으며 대한민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진수 기자가 2002년 찍었다.
미국 버클리 음대 재학 시절 피시통신을 통해 업로드한 MP3 파일 하나로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충격적인 데뷔를 한 조피디. 그는 이후 이정현과 싸이의 프로듀싱도 맡으며 대한민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진수 기자가 2002년 찍었다.

이처럼 피시통신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인터넷 이전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수준을 넘어 문학과 음악,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현상을 주도하였다. 이런 네티즌들의 문화는 새로운 소비와 생산의 주역들을 교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터넷의 등장과 모바일 혁명은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 해설자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IT 융합 전문가입니다. 미래 트렌드 및 전략 자문가로 활동했습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보건정책관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이 있습니다.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사진, 기사, 지면 이미지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관련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 사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시즌3인 25~36화는 주로 기업·기업인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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