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은 올해가 ‘성장의 발판’이 된 한 해였다. 무엇보다 지난 봄 일본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콘솔게임 바람을 일으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게임은 코로나 힐링 게임이란 입소문이 나면서 대란 수준의 인기를 끌었다. 피시(PC)·모바일 게임을 주력으로 삼아온 국내 업체들도 콘솔게임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의 무게추도 콘솔게임 쪽으로 이동할까?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왼쪽), 엑스박스 시리즈 에스.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콘솔게임의 열기는 지난달 차세대 콘솔게임 기기 사전예약 매진사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음달 10일 새 콘솔게임 기기인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Series X), ‘엑스박스 시리즈 에스’(Series S)를, 이틀 뒤인 12일에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5’(PS5)를 내놓을 예정이다. 정식 출시를 앞두고 지난달 18일(플레이스테이션)과 22일(엑스박스) 진행됐던 이들 기기의 사전 예약판매는 ‘1분 만에’ 준비된 물량이 전부 동이났다.
1972년 1세대 콘솔게임 기기가 나온 이후, 6∼8년을 주기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현재는 2013년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4’와 ‘엑스박스 시리즈 원’ 등 8세대 기기까지 나왔다. ‘플레이스테이션5’와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 ‘시리즈 에스’는 7년 만에 출시되는 새 기기이다. 다음달 정식 출시되는 플레이스테이션5 디지털에디션의 가격은 49만8천원, 울트라 에이치디(HD)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브가 장착된 기기는 62만8천원이다.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는 59만8천원, 블루레이 기능이 빠진 시리즈 에스는 39만8천원에 판매된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와 함께 ‘빅3 콘솔게임’으로 분류되는 닌텐도는 올 봄 내놓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품절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데에는 코로나19가 자리잡고 있다. 올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탓에, 2월부터 한국 시장용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와 주변기기의 출하가 지연되면서 기기 수급이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20일 발매된 인기 게임 타이틀 동물의숲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코로나 힐링게임’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닌텐도 대란’이 벌어졌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동물들과 교류하며 마을을 꾸미는 내용의 게임으로,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글로벌 점유율 2위, 한국에선 왜 존재감 없나
콘솔게임은 모바일게임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 플랫폼이다. 하지만 국내시장에선 모바일과 피시게임에 크게 밀리며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펴낸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18년 글로벌 게임플랫폼 규모는 모바일 게임이 638억8400만달러로 1위이고, 콘솔게임이 2위(489억6800만달러), 피시게임은 328만700만달러로 3위였다. 하지만 국내에선 순위가 다르다. 2018년 국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은 모바일게임(6조6558억원, 46.6%)으로 글로벌과 같지만, 2위는 5조236억원(35.1%) 규모의 피시게임 시장이고, 콘솔게임은 피시게임의 10분의1 수준인 5285억원에 그쳤다.
한국에서 콘솔게임이 약세를 보인 데는 여러 사회·문화적 요소가 작용했다. 게임업계에서는 ‘피시방 문화’와 ‘저작권 인식’을 꼽는다. 서구권에서는 ‘게임은 여럿이서 함께 즐기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있어서, 거실에서 티비에 연결해 가족구성원들이 다같이 즐기는 콘솔게임이 비교적 튼튼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게임은 청소년이 혼자 방에서 부모 몰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컸고, 피시방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지금까지도 피시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과거에는 불법 복제한 소프트웨어가 헐값에 흔히 거래됐는데 콘솔게임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와 엑스박스360의 경우, 콘솔 기기만 구입하고 소프트웨어는 불법으로 다운받아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았다. 이같은 불법 복제물 이용은 게임시장 침체, 양질의 소프트웨어 미발매, 이용자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한국닌텐도 제공
다만 모바일·피시에 밀리고는 있지만 콘솔게임의 성장세 만큼은 뚜렷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1598억원에서 5285억원으로 매년 꾸준히 시장 규모가 성장했다. 특히 2017년과 2018년에는 약 40%씩 매출이 늘었다. 콘진원은 “2017년 12월 발매된 닌텐도 스위치가 2018년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기간 닌텐도 스위치 판매 실적, 기기와 함께 구매한 게임 소프트웨어 실적들이 집계되면서 콘솔게임 시장 규모가 크게 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틀그라운드’와 ‘테라’ 등 피시에서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 콘솔 버전으로 판매되고 성과를 거둔 점도 콘솔 게임 시장규모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콘진원은 덧붙였다.
전망도 밝다. 콘진원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차세대 콘솔 등장에 따른 게임산업의 변화와 전망’ 보고서에서 “국내 콘솔게임 시장은 과거보다는 다소 희망적”이라고 평가하며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시디(CD)나 디브이디(DVD) 시대와 달리, 현재는 콘솔 기기에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불법 복제를 방지하는 업데이트가 상시 이뤄지면서 불법 개조 사례가 줄었다고 봤다. 또 게임 콘텐츠의 가치에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는데 거부감이 없어지고 정품을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됐다는 게 콘진원의 판단이다. 콘진원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 다양한 킬러 타이틀을 통해 콘솔 게임에 유입된 신규 이용자가 증가하는 등 현재는 콘솔시장 성장에 중요한 기회인 시점”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당분간 비대면 활동 권장으로 게임 이용자 수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며 차세대 콘솔 등장과 맞물려 콘솔 게임 이용자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달 10일 북미와 유럽에서 출시되는 엔씨소프트의 첫 번째 콘솔게임 ‘퓨저’. 엔씨소프트 제공
그동안 피시게임 위주였던 국내 게임사들도 인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콘솔게임 출시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콘솔게임의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플랫폼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먼저 엔씨소프트는 다음달 10일 북미와 유럽에서 ‘퓨저’를 출시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의 첫 콘솔게임으로, 피시와 현 세대 콘솔게임 기기(플레이스테이션4, 엑스박스 원, 닌텐도 스위치)에서 구동이 가능하다. 엔씨소프트는 내년을 목표로 리니지 시리즈 신작 ‘프로젝트 티엘’도 피시와 콘솔용으로 개발 중이다. 넷마블도 인기 아이피 ‘세븐나이츠’를 활용해, 닌텐도 스위치에서 구동 가능한 콘솔버전 ‘세븐나이츠 타임 원더러’를 4분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 모바일 버전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로 큰 인기를 누린 넥슨도 콘솔 버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개발하고 있다. 넥슨은 2010∼2011년께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를 콘솔버전으로 출시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콘솔게임을 둘러싼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자 재도전에 나선 모양새이다. 카트라이더를 콘솔 개발 아이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넥슨 쪽은 “카트라이더는 먼저 결승선에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식으로 비교적 쉬운 규칙의 게임이다. 부모와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콘솔로 출시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