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시대 예술과 기술의 미래’ 토론회에서 미학자 진중권(오른쪽) 동양대 교수가 프리더 나케의 컴퓨터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수학자 프리더 나케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련의 작업을 해온, 컴퓨터 예술의 선구자다.
인공지능이 미술품을 창작하는 환경에서 예술과 창작 활동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인공지능이 예술품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져온 창의성에 대한 도전인가, 아니면 사진기술처럼 예술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는 도구의 등장인가. 최근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예술품을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인공지능 환경에서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움트고 있다.
■ 창작하는 인공지능의 등장
지난달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최초로 인공지능이 창작한 그림이 경매에 나와, 고가에 낙찰되는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연구자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가 43만20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애초 1만달러 수준으로 예상됐던 낙찰가를 40배 넘어선 가격이다. 작품은 가상의 남자 초상인데 눈 코 입과 얼굴 윤곽을 모호하게 묘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그려냈다. 오비어스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화 1만5000여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미지를 분석해 초상화 구성요소를 학습한 뒤 창작을 해냈다.
이날 경매에선 함께 출품된 앤디 워홀의 작품이 7만5000달러에 낙찰됐다. 인기높은 팝아트 거장의 작품 낙찰가보다 인공지능 작품이 6배 높게 시장에서 평가된 것이다. 2016년 2월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유명 화가의 스타일을 모방해 만든 작품 29점이 9만7600달러에 판매된 이벤트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미술경매 시장에서 인공지능의 창작품이 판매된 사건은 인공지능 예술이 새로운 투자와 소장 대상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수히 많은 창작품 중에서 가치있는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주요한 경로의 하나는 전문가들과 감상자들이 내리는 평가이고, 크리스티경매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초로 입찰이 이뤄진 인공지능 오비어스가 만든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 화가의 서명 대신 오른쪽 아래에 작품 생성 알고리즘이 적혀 있다.
■ 도전받는 예술의 본질
지난 1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이화인문과학원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예술과 기술의 미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에서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물리적 관점에서 창작은 없다.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할 뿐”이라며 “예술적 창작은 사람이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가치나 의미를 부여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예술은 절대적 기준이 없는 가치의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기계가 창작한 결과를 예술로 인정할지는 누가 그 해석의 권력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무엇을 예술로 할지 해석하는 힘을 갖게 된다면 얼마든지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합의와 변경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미적 가치는 물리적 속성이 아니다”라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은 예술이 아니라 이미테이션 게임인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작품은 그것이 독특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 창작 주체가 자신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감상자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게 핵심”고 말했다. 마르셸 뒤샹이 기성품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해 파란을 일으킨 행위는 그가 변기를 창작했느냐가 아니라, 그 변기를 선택한 행위에서 예술적 의미가 생겨났다는 의미다. 뒤샹은 변기의 유용성을 사라지게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즉 예술은 미적 주체가 새로운 관념을 만들고 그 해석을 관철시키는 활동인데 이는 감정과 이성을 가진 유기체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 예술계에 던져진 새 과제
고대 동굴벽화로부터 렘브란트 초상화, 뒤샹과 폴록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사람이 스스로의 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한때 아름다움과 동의어였던 예술은 현대에 이르러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해석을 통해 더이상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닌 인간 고유의 의식적 표현 행위와 의미 부여행위로 달라지게 됐다. 사진 기술과 대량 복제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지평이 열려왔다.
오비어스를 개발한 연구진의 일원인 피에르 푸트엘은 아에프페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계가 그린 그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며 “이미지를 만드는 건 알고리즘이지만, 그 알고리즘은 사람이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컴퓨터 생성 예술(CGA)이 창작한 결과물의 저작권 설정을 놓고 어디까지를 사람의 통제와 개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랜덤한 결과를 개발자의 창작영역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 끝에 랜덤한 생성 결과까지도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의 디자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창작 알고리즘 역시 창작자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표현물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보다 이를 디자인한 창작자의 의도와 해석이 예술의 핵심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논리적 설명력을 갖춘 ‘설명가능성’ 구현으로 진전하고 있다. 알파고 충격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용자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효율적 결과에 찬사를 보내며 수용했는데, 인공지능 예술이 미적 가치에 대한 설명능력까지 갖춘다면 인공지능 예술은 환대받을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은 현대 예술 발전과정에서 직면해온 예술의 본질에 관한 물음으로 답해지지 않는 새 질문을 던지며, 인공지능 시대 예술 개념의 재설정과 확장에 대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글·사진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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