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페이스북만큼 민감한 개인정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차세대 플랫폼’이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AI) 비서’로 불리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그것이다. ‘비서’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넘겨줘야 하는 개인정보도 그만큼 많다. 특히 나의 음성명령 정보는 비식별조치를 했다는 이유로 업체에 의해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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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개인정보 광범위 인공지능 스피커의 기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초기 음악감상, 날씨 검색 등에서 스마트홈, 온라인 쇼핑, 배달음식 주문 등으로 넓어지고 이제는 전화통화, 음성결제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9일 카카오는 자사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미니’에 카카오톡의 전화서비스인 ‘보이스톡’ 기능을 추가했다. 케이티의 스피커 ‘기가지니’는 지난 2일 일부 상품에 대해 음성만으로 주문에서 결제까지 마칠 수 있는 ‘보이스페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최종 단계에서 휴대폰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케이티는 오는 6월 음성결제 기능을 계좌이체, 콘텐츠 구매 등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이런 기능에는 관련 개인정보가 필요하다. 카카오미니는 카카오서비스 친구목록 등이 들어 있는 카카오계정을 필수 정보로 요구하고 있다. 기가지니는 음성결제를 위해 ‘음성특징 정보, 단말 정보, 계정 아이디(ID), 간편송금 서비스 수신인의 실명·호칭·이동전화번호, 화자식별 결과’를 요구한다.
기가지니는 위 정보 외에도 △개인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 ‘음성명령 언어정보, 서비스 이용 기록, 개인별 성향 정보, 주소, 전화번호, 주소록, 일정, 선호 버스정류장, 이용콘텐츠 정보, 지니뮤직 아이디, 홈IoT 이용 케이티 아이디 등’을 △본인인증 등과 관련해 ‘성명, 생년월일, 성별, 전화번호, 케이티 아이디 또는 에스엔에스(SNS: 카톡, 네이버, 페이스북) 아이디, 이메일 등’을 △영상서비스 등과 관련해 ‘사용자 얼굴표정, 사람 수’ 등을 제공해야 한다. 케이티 관계자는 “기가지니가 인공지능 스피커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정보도 많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 ‘누구’는 ‘티(T) 아이디, 이메일주소, 전화번호, 성명, 생년월일, 사용자 음성명령 언어정보, 이동전화번호, 단말기 위치정보, 주소, 주문 정보, 스마트홈 아이디, 멜론 아이디, 구글 아이디 등’, 네이버 ‘클로바’는 ‘음성명령 언어정보, 단말기 주소록 정보(이름·연락처), 주소, 주문 정보, 서비스 이용 기록 등’을 요구한다. 카카오는 카카오계정, 닉네임, 음성명령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위치정보 제공에도 모두 동의해야 한다.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필수 정보만 수집하고 있으며, 데이터 센터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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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성명령 정보는 어떻게 여러 개인정보 중에서도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에 고유하게 제공되는 개인정보가 있다. 바로 ‘음성명령 정보’다. 내가 스피커에 물어보고 명령하는 내용들은 모두 업체의 서버에 저장된다. 케이티, 에스케이텔레콤, 네이버는 이 음성정보를 ‘비식별조치’(가명처리, 데이터 부분 삭제 등을 통해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 조치)한 뒤 24개월 동안 보관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중에는 서비스를 탈퇴해도 관련 정보가 파기되지 않는다. 모든 개인정보는 ‘서비스 탈퇴 시 파기’가 원칙이지만, 비식별조치를 한 까닭에 개인정보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비식별조치 정보는 외부업체 제공도 가능하다. 단 카카오는 음성명령 정보를 비식별조치 하지 않고 보관하며 저장·파기도 개인정보에 준해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음성명령 정보는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기록, 개인정보 등과 함께 업체들이 스피커 기능 향상, 맞춤형 광고,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의 재료가 된다. 하지만 비식별정보라고 해도 다른 데이터와 결합해 ‘재식별’(개인이 다시 특정되는 것)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활용 범위를 놓고 ‘더 넓혀야 한다’는 기업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는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최소 수집’의 원칙을 지켜야 하고, 이용자들이 명확하게 알 수 있게 고지를 해야 한다”며 “이용자들도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지 약관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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