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자동차에서 네이버의 ‘어웨이’에게 음성으로 길안내를 지시한다. 회사에서는 구글의 ‘픽셀북’을 열고 구글 홈페이지에서 뉴스검색을 한다. 퇴근길에 구글의 ‘픽셀폰’으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책을 물어본다. 서점에 갔더니 네이버의 ‘어라운드’가 돌아다니며 책 정리를 하고 있다. 집에 도착해 네이버의 ‘프렌즈’에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시킨다. 네이버의 ‘아키’를 통해 아이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한다. 조금 뒤 아이가 현관에 들어오는 모습을 구글의 ‘클립스’가 알아서 찍어준다.
구글은 세계 1위, 네이버는 국내 1위의 인터넷 검색업체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통상적인 분류법인 C(컨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에 따르면 플랫폼업체이기도 하다. 컨텐츠에는 게임·엔터테인먼트 회사, 네트워크에는 통신회사, 디바이스에는 삼성전자 같은 하드웨어 제조회사가 속한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일상 생활 곳곳에서 ‘구글’ ‘네이버’ 브랜드가 찍힌 각종 하드웨어 제품을 보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소프트웨어-하드웨어, C-P-N-D 사이의 칸막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가장 중요한 자원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넘어 생활환경 전반으로 이용자 접점을 확대하려는 플랫폼 기업들의 움직임 탓이다.
‘made by Google’ 쏟아낸 구글
지난 19일 구글은 미국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 ‘픽셀2’와 ‘픽셀2XL’의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해 나온 픽셀폰의 후속작인 이 제품들은 지난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 이벤트에서 처음 공개됐다. 구글은 이 행사에서 스마트폰을 포함해 인공지능스피커 ‘구글홈’의 새로운 버전인 ‘구글홈 맥스’와 ‘구글홈 미니’, 가상현실 기기 ‘데이드림 뷰’, 노트북 컴퓨터 ‘픽셀북’, 이어폰 ‘구글 픽셀버즈’, 카메라 ‘구글 클립스’ 등 무려 8종류의 하드웨어 신제품을 쏟아냈다.
이들 제품에는 모두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됐다. 구글홈 맥스는 가족 각각의 목소리를 인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픽셀버즈는 외국인과 통화할 때 내용을 번역해 들려준다. 구글 클립스는 중요한 장면이나 사람을 파악해 스스로 사진을 찍는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행사에서 “이제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중요하며 구글은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트렌드, 하드웨어 진출
네이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네이버는 오는 26일 자사의 인공지능플랫폼 ‘클로바’가 탑재된 인공지능스피커 ‘프렌즈’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스피커인 ‘웨이브’는 지난 5일 일본에서 출시됐다.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스피커 ‘페이스’(가칭)도 준비 중이다. 지난 8월 공개한 차량용인포테인먼트(IVI)플랫폼 ‘어웨이’도 12월께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내년 1월에는 유아용 스마트워치 ‘아키’도 출시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지난 16일 기술컨퍼런스 ‘데뷰 2017’에서 실내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어라운드’ 등 로봇 9종류와 자율주행차 기술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의 물꼬를 튼 제품은 인공지능스피커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지난 2014년 선구적으로 ‘에코’를 내놓은 이후 지금까지 천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국내에서도 통신업체 에스케이(SK)텔레콤, 케이티(KT)가 각각 ‘누구’와 ‘기가지니’를 내놓았고, 카카오도 이번달말 ‘카카오미니’의 정식판매를 시작한다. 페이스북은 지난 11일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 고’를 공개하고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데이터는 온라인에만 있지 않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하드웨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데이터 확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데이터 수집이 주로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졌지만,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열리면서 하드웨어 기기를 통한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이 중요해지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뿐 아니라 인공지능스피커, 냉장고나 티브이 같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모두 이용자의 경험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정호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물인터넷 시대에 구글이나 네이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남아있으면 데이터수집 역량이 하드웨어 제조사들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지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제조업체에게 하드웨어 몇대를 팔았느냐가 중요하다면, 플랫폼업체는 하드웨어를 팔아서 데이터를 얼마나 취합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업체들 역시 인공지능 생태계에 눈독을 들이면서 정보를 공유하기보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업계 상황도 한몫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삼성 개발자 대회’에서 “티브이, 냉장고, 전구, 자동차 등 모든 기기에 기기나 칩을 부착해 ‘빅스비’(삼성의 인공지능플랫폼)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물 인공지능 시대’를 선언했다.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 등이 선점한 인공지능플랫폼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기업들이 기존 하드웨어와 차별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규섭 케이티 융합기술원 AI테크센터 책임연구원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생각하는 하드웨어’의 개발이 가능해졌고, 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제는 C-P-N-D 네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기업만이 ICT 생태계를 주도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기업의 궁극적 목적은 ‘플랫폼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하드웨어를 통한 이용자 접점 확대→데이터 수집→인공지능기술 발전→플랫폼 성능 강화→생태계 확대→새로운 비지니스 모델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 하는 것이다. 문 연구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커넥티드 플랫폼’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릭 오스텔로 구글 하드웨어 부문 부사장의 발언은 이런 의도를 잘 보여준다. “당신이 어디에 있건, 어떤 디바이스를 사용하건 당신은 ‘구글 어시스턴트’와 함께 당신이 원하는 정보에 연결되고 당신이 해야할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made by Google 이벤트 기조연설 중)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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