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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사과는커녕, 이통사에 고맙다는 유영민 장관

등록 2017-09-03 19:03수정 2017-09-04 09:45

Weconomy | 현장에서
선택약정할인 수용했다며 ‘감사’ 표명
반쪽 된 정책에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

지난달 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단 정책간담회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지난달 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단 정책간담회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기업을 해본 입장에서 이동통신사는 매출이 줄고 힘이 들 텐데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이통사와 정부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국회의 한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어려운 결정’이란 이통 3사가 정부의 선택약정할인율 인상 조처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유 장관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 장관은 이통사에 ‘감사’할 때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때다.

이통 3사는 지난 6월22일 새 정부의 통신비 인하 방안이 발표되자 ‘행정소송’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만약 소송을 제기했다면 이는 통신규제당국에 대한 이통사들의 20년 만의 첫 소송이자, 문재인 정부 정책에 기업이 첫 반기를 든 사례가 되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통신비 원가 공개 논란이 불붙었을 수도 있다. 이통사에 행정소송은 칼집에서 빼기에 너무 위험한 칼이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칼집에서 칼을 달그락거리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달성했다. 정부는 할인율 인상을 기존 가입자에게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포기했다. 위약금 면제도 물건너갔다. 이통사들은 “이번까지는 참지만, 앞으로 보편요금제 도입 같은 추가 정책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큰소리친다. 정부가 감사할 상황이 아니다.

사실 가장 머쓱해야 할 사람은 유 장관이다. 그는 이통사와 줄다리기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소급적용이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과기정통부가 ‘소급적용 불가’ 방침을 공식 발표하기 이틀 전인 지난달 16일에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원안대로 간다”고 말했다.

장관은 결과적으로 ‘허언’을 한 셈이 됐지만, 부하인 통신정책 담당 공무원들은 처음부터 소급적용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이통사와 협의 중”이라고 말하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을 흘렸다. “장관이 실무진에게 제대로 보고받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유 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단 정책간담회에서 “소급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존 가입자도 2년쯤 지나면 다 25%로 오기 때문에 법을 바꿔가면서 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뒤집었다. 한마디 해명도 없었다. 오히려 이틀 뒤 이통사들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이통 3사 대표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겠다. 모두 함께 만나면 모양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은 이통사 대표가 아닌 통신비 부담을 호소하는 국민들이다. “기본료 폐지한다고 하더니 결국 할인율 인상도 신규만 해준다는 거냐.” “이번 정부도 역시 통신비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건가.” 실망감과 허탈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유 장관 스스로 한 말에 답이 있다. “모든 정책의 주인공은 국민이라는 생각으로 추진하겠다. 국민과 소통하겠다.”(8월29일 기자단 정책간담회 발언)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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