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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사람 닮은 로봇, 인간 공감능력 확대할까? 파괴할까?

등록 2017-07-10 15:10수정 2017-07-10 15:19

Weconomy | 구본권의 디지털 프리즘
지능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2015년 개봉된 공상과학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영화에서는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가 사람처럼 감정을 지닐 수 있는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지능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2015년 개봉된 공상과학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영화에서는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가 사람처럼 감정을 지닐 수 있는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AI 활용한 섹스로봇·반려로봇
실용화 앞두고 기대·우려 교차
소외계층 위한 필요성 높지만
사람 대상화해 감정 왜곡할 수도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섹스로봇·감성로봇과 인간감정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은 섹스로봇 실용화가 시간문제일 따름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섹스로봇이 가시화함에 따라 관련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5일 네덜란드의 ‘책임있는로봇연구재단(Foundation for Responsible Robotics)’은 ‘로봇과 함께할 미래의 성생활’ 보고서를 내고, 섹스로봇의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조명했다. 이 보고서는 섹스로봇이 성관계 상대를 찾기 어려운 사람이나 노인 등에게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여성이나 어린이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부추겨 성 의식과 문화를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담았다.

섹스로봇 업체들이 현재 미국 등에서 판매 중인 제품은 약 5000~1만5000달러(575만~1725만원) 수준이다. 과거의 섹스인형과 달리,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등 상호작용의 수준을 높이는 게 업체들의 목표다. 미국의 어비스 크레에이션, 안드로이드 러브돌, 섹스봇컴퍼니를 비롯해 영국의 트루컴패니언 등이 대표적인 업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는 2014년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이면 섹스파트너로 로봇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선덜랜드대학의 심리상담학자 헬렌 드리스콜 박사는 “2070년이 되면 로봇과의 성관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사람과의 성관계보다 오히려 더 대중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있는로봇연구재단의  ‘로봇과 함께 할 미래의 성생활’ 보고서.
책임있는로봇연구재단의 ‘로봇과 함께 할 미래의 성생활’ 보고서.
개발업체들은 섹스로봇이 기존의 섹스인형이나 섹스 토이처럼 사회의 성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순기능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법 성매매와 성폭력 그리고 가정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성기능 장애 치료용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맞서 로봇 인류학자인 영국 드몽포르대학의 캐슬린 리처드슨 박사는 2015년 섹스로봇을 금지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캐슬린은 “애초에는 섹스로봇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성인 여성이나 아동에 대한 수요를 줄일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연구결과 그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성적 욕구 충족만을 위해 고안된 섹스로봇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간관계에서 육체적인 것 외에는 필요 없다는 관점을 강화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책임있는로봇연구재단의 보고서를 집필한 재단의 공동대표이자 네덜란드 델프트대학 교수인 에이미 반 윈스베르게(Aimee van Wynsberghe)는 섹스로봇은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가져오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서 판매 중인 세계 최초의 감성인식 로봇 페퍼.
일본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서 판매 중인 세계 최초의 감성인식 로봇 페퍼.
사람과 감성적 소통이 가능한 인공지능 반려로봇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페퍼, 지보, 버디 등의 반려로봇은 사람과의 성관계를 대체하지 않지만, 감정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걸 목표와 가치로 제시한다. 섹스로봇의 사회적 허용과 개인적 채택 여부와 별개로, 감성적 소통 기능을 갖춘 반려로봇의 등장 역시 인간에게 위협적 요인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오랫동안 형성해온 인간관계에 대한 관념과 감정체계를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감정적 연기 능력을 갖춰 튜링 테스트처럼 사람을 속일 수 있게 된 로봇은, 감정적 동물인 인간에게 감정의 본질을 묻는다. 일찍부터 로봇과 기계와의 관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태도와 심리를 연구해온 매사추세츠공대의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우리가 인터넷이나 로봇을 통해 기계와 형성하는 유대감은 서로를 결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팔게 하는 연결이라고 말한다. 감정적으로 불편해지는 일을 로봇에 떠넘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유용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돌봄 기능의 반려로봇이 가져올 결과에서도 예견된다. 돌보는 일을 로봇에 위임하게 되면 그 임무를 맡기는 사람에게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살핌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교와 돌봄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반려로봇은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하기 어려운 정서적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로봇과 감정적 유대를 경험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 중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감정들을 제거하고 내가 필요로하는 감정들만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 두뇌는 무엇보다 사회생활을 위한 감정적 소통과 처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달한 체계로, 생태계에서 인간의 우월성은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적 소통능력이라고 말한다.

반려로봇, 섹스로봇 등 인간의 감정을 상대하고 처리하는 로봇이 등장한다는 것은 동시에 기존에 사람들끼리 맺어온 유대와 감정적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성형 로봇과 섹스로봇의 등장은 사용자의 요구를 무조건 처리하는 기능이 특징이다. 이러한 감성형 로봇과 섹스로봇이 확산될 경우 이는 상대의 반응과 표정, 눈빛을 살피면서 반응해온 사람의 소통능력에 중대한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지능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2015년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영화에서는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가 사람처럼 감정을 지닐 수 있는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지능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2015년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영화에서는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가 사람처럼 감정을 지닐 수 있는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사람 수준의 감정 인식 및 표현 기능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람과 비슷한 능력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의존이 깊어질 것이다. 이럴 경우 동시에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와 특징은 희소해진다. 섹스로봇이나 감정 인식 로봇이 보급되면 이 도구가 많은 사람들의 감성적 상대가 되는 현상은 불가피하고, 강한 수요를 가진 관련 기술 개발과 채택을 막기 어렵다. 1인사회, 고령화사회, 개인주의가 강화될 미래에 감성형 로봇은 범용화가 예상된다.

사람들이 감성형 로봇과 인공지능과의 관계에 익숙해지게 되면 자신의 기대와 예상과 다르게 반응하는 자연인의 감정에 대응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과의 감정적 소통이 줄어들고 어려운 관계가 됨에 따라, 인간의 공감과 소통능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인간의 능력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 경쟁을 선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 사티야 나델라는 2016년 11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보급된 사회에서 가장 희소성을 갖는 것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라고 말했다.

진화생물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최근작 <울트라소셜>에서 높은 사회성이 사람의 본질이라며, 인류의 역사는 소속 집단에서 동일한 종족으로, 또 반려동물과 자의식을 지닌 동물로까지 점점 공감 대상을 확대해온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인간은 기계마저 감정적 소통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내고 로봇과 공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섹스로봇·반려로봇의 등장은 거꾸로 인간 고유의 특징인 공감능력을 훼손하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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