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추론과 호기심과 같은 인간 지능의 핵심적 기능을 모방하려는 시도에서 잇단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사람처럼 상이한 정보를 실마리로 범인을 추론하거나, 즉각적인 보상 대신 호기심을 추구하는 기능의 인공지능을 구현했다는 보고가 최근 연구논문을 통해 잇따라 발표되었다. 사람의 지적 능력에서도 핵심적이라고 여겨온 영역을 인공지능이 구현하는 데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커져가고 있다.
AI, 서로 다른 정보에서 추론 능력 구현
사람처럼 추리소설에서 범인 예측 가능
즉각적 보상 대신 호기심 기반 탐색도 구현
잇단 성과 불구 사람 지능과는 차이 많아
인공지능이 탐정 셜록 홈스처럼 고도의 추리 능력을 지니는 게 가능할까.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는 이달 초 여러 다른 종류의 정보들을 통해 다음 상황을 예측하거나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관계형 추론’ 기능의 인공지능을 구현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개방형 논문 사이트인 코넬대 아카이브(arXive.org)에 게재했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실마리를 근거로 사건의 범인을 예측해보는 일이나, 쇼핑객들이 시장에서 망고와 키위 중 어떤 것을 사는 게 나을지 비교해보는 일 등 사람처럼 추리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기능의 인공지능이다. 이는 상이한 형태와 내용의 정보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활용해 추론하는 능력으로, 그동안 딥러닝 방식의 인공지능도 구현하지 못한 영역이다. 서로 다른 형태와 소재로 이뤄진 사물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이 이들 간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결과, 68.5%의 응답률을 보인 기존 인공지능과 달리 95.5%의 응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사람의 응답률 92.5%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딥마인드 연구팀은 인공지능이 서로 다른 소재, 형태로 이뤄진 사물을 놓고 이들 간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실험을 통해 인공지능이 관계형 추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딥마인드 제공
사람처럼 호기심을 발휘하는 인공지능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전망을 갖게 하는 시도도 성공했다. 미국의 과학정보 매체 <엠아이티(MIT) 테크놀로지 리뷰> 5월23일치에 따르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최근 호기심 기반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즉각적 피드백과 보상이 없어도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는 게 특징인데, 슈퍼마리오 게임과 사격게임 도구 비즈둠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기존 인공지능에 비해 뛰어난 성과를 냈다. 곧바로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효율적 시도를 하는 대신 게임 초반에 자신이 처한 전체적 환경과 규칙의 특성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다는 게 특징인 인공지능이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보상이 장기적 모색과 판단을 저해해온 인공지능 강화 학습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 지적 기능의 핵심인 호기심에 비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선보인 뇌 신경망을 모방한 강화학습 방식의 인공지능(딥러닝)은 주어진 모든 가능성에 대해 탐색을 하는 무작위 연산이 아니다. 이전 경험에서 나온 피드백을 반영한 가중치를 적용해 가지치기를 하면서 무수한 선택 경로에서 선택지를 좁혀가며 점점 승률을 높이는 구조다(몬테카를로 트리 방식). 개를 훈련시킬 때처럼 기대하는 행동에 보상을 주고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이런 강화 학습은 높은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을 빠르게 학습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지만, 즉각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모색이나 전반적 탐색은 비효율로 판단해 중단하게 한다. 과업의 목표와 보상이 명확한 경우엔 효율적이지만, 당장의 성과가 장기적 성취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엔 부적합한 학습 방법이다. 심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관찰된 즉각적 보상을 유예하고 장기적 목표를 추구할 때 얻어지는 성과와 유사하다. 사람의 학습은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과업을 추구할 때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인공지능이 상이한 형태의 정보를 기반으로 정보들 간의 관계를 추론하거나 즉각적 보상 대신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환경을 탐구할 수 있다는 소식은 인공지능을 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가능성이면서 호기심마저 기계가 따라 하는 환경에서 인간의 고유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기계는 인간이 호기심을 활용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여왔고, 이는 일종의 호기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엔지니어들은 자동차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호기심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구조 개선, 에어백, 브레이크 미끄럼 방지, 보행자 감지 등 신기술을 개발했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자동차 설계에 적용해왔던 관행과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성을 기초로 전혀 새로운 디자인과 구조 설계를 구현할 수 있다. 사람과 다른 유연성을 갖춘 기계 지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알파고와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프로바둑기사들이 “인간 바둑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수이지만 놀랍게 효과적인 포석이다”라고 열광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인공지능이 바둑, 퀴즈, 포커 등에서 인간 최고수를 압도하는 일이 일어났지만 추론 능력과 호기심에서 기계가 사람을 능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주의 원자보다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종래의 믿음이 무너졌을 따름이다. 사람 지능은 호기심과 추론만이 아니라 능동적 회상, 자율성, 상상력 등 다양한 기능을 종합적으로 발휘해 미지의 상황에서도 대처 방법을 찾아가는 특징이 있다.
지난 4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기계에 불어넣으려는 ‘인공적 호기심’과 달리, 인간 호기심은 자유롭고 변덕스럽다는 점이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기계가 호기심마저 모방하게 된 시점에서 사람은 새삼 호기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는 점과 그 호기심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차별성이자 가능성으로 주목할 만하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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