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과 입주를 앞둔 미국 팰로앨토의 애플 신사옥. 스티브 잡스의 유작으로 일컬어지는 우주선 모양의 애플 새 사옥은 그가 픽사의 사옥을 지으면서 직원들 간의 우연한 만남을 극대화하고자 한 정신이 설계에 반영돼 있다. 유튜브 캡처.
원격근로와 혁신의 관계
정보화 기술을 활용한 원격근무·유연근무 전도사 역할을 해오던 아이비엠(IBM)이 전격적으로 방침을 바꿔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이비엠 본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미셸 펠루소는 지난 2월8일 영국 언론 <레지스터>를 통해 공개된 내부 영상메시지에서 “미국내 마케팅 부문 직원들은 앞으로 30일 안에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뉴욕, 애틀랜타, 롤리, 오스틴 등 6곳에 있는 전략 사무실로 출근할 것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사표를 써야 한다”고 지시했다. 펠루소는 “팀이 될 때 더 강력해지고 창의적이 된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원격근무 백지화의 배경으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들과의 경쟁을 거론했다. 그녀는 패션스타트업 길트닷컴의 최고경영자와 시티은행 마케팅 최고임원을 지냈으며, 지난해 아이비엠에 합류했다.
<레지스터>에 따르면, 아이비엠의 원격근무 폐지는 마케팅 부문에 국한한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부문을 포함한 전사적 차원에서 실행된다. 컴퓨터 등 사무정보화 기기와 서비스 기업답게 아이비엠은 수십년 전부터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근무를 많은 업무영역에 적용해왔다. 이 회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38만6000명의 직원 중 40%가 재택근무 등의 형태로 원격근무를 시행했다. 아이비엠은 사무실 비용 절감, 업무 지속성, 교통비용·탄소배출 감소, 장소 무관한 업무수행, 만족도 상승, 일과 삶의 균형 등을 장점으로 홍보하며 원격근무의 확산을 주창해왔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아이비엠, 에이티앤티(AT&T)와 같은 기업의 영향으로 미국 전체 기업의 노동자 25%는 직무시간 대부분을 원격근무로 처리하고 있다.
아이비엠의 원격근무 폐지에 대해 일부 젊은 직원들은 찬성하지만, 원격근무에 적응해온 중장년층 직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주 대상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뉴욕, 보스턴 등은 임대료도 매우 비싼 곳이다. 아이비엠은 주거보조비 없이 이사지원비로 한달치 기본급만 제공한다. 원격근무 폐지에 따라 많은 직원이 퇴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사무실 근무 결정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온 아이비엠이 직원 감축을 위해 선택한 학살적 구조조정 수단이라는 관점도 있다.
이에 대해 펠루소는 “모두가 참담한 심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인원 감축이 목적이라면 훨씬 더 단순하고 편리한 방법이 많다”며, 사무실 근무가 혁신과 창의적 근무환경을 위한 선택이라고 역설했다. 정보기술 분야의 경쟁은 기존 사업모델과 업무방식 대신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기술과 서비스를 만드는 게 중심이다. 인공지능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로봇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혁신은 원격근로를 통해서 기존 직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인식의 배경이다.
이메일, 메신저, 화상회의, 클라우드 시스템, 모바일오피스,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라 과거 어느 때보다 유비쿼터스 업무 환경이 갖춰진 상황에서 원격근무의 대표기업 아이비엠이 정반대의 선택을 내린 것을 인원 감축과 비용 절감 동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현재 정보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은 원격근무 대신 사무실 근무를 강화하는 전략을 택해 성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짜 간식과 다양한 메뉴의 식당, 휴게시설 등 사내 복지시설과 서비스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는 개발자들을 비롯한 직원들이 최대한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무르면서 소통하도록 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사내에 세탁서비스와 술집, 자전거수리센터까지 제공하는 추세다. 2013년 구글의 최고재무책임자 패트릭 피셰트는 “원거리 통근자가 몇 명인가”라는 질문에 “가능한 한 최소화시키는 게 목표”라고 답한 바 있다.
최근 사옥을 새로 지었거나 지을 계획인 이들 기업의 신사옥 설계 공통점은 우연한 만남이 늘어나도록 공간을 만들고 동선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화장실이나 정수기 등 필수 이용시설을 중앙에 배치해, 직원들 간의 만남이 가능한 한 많아지도록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제작사 픽사를 세워 <토이스토리>로 성공을 거둔 뒤 사옥을 신축할 때 건물 중앙에 대형 남녀화장실을 하나씩만 만들어 소통과 만남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의 존 설리번 교수(인사전략)는 “원격근무는 1980~90년대에 탁월한 전략이었지만 현재는 아니다”라며 혁신엔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게 핵심이라고 <쿼츠>와의 회견에서 밝혔다. <창의성의 즐거움>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이 꽃피운 공간으로 전성기의 아테네, 10세기 아랍 도시,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15세기 베네치아, 19세기 파리 빈 런던, 20세기 뉴욕을 들며 “서로 다른 전통의 정보가 교류하고 통합되는 문화의 교차로”였다는 공통점을 강조했다. 매사추세츠공대의 셰리 터클은 <대화의 복원>에서 스마트폰 환경에서 소통과 공감을 위한 기술적 수단이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진정한 대화가 사라졌다며, 면대면 만남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칼리지파크 메릴랜드대의 심리학자 케빈 던바는 실험연구를 통해 대부분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10명 남짓한 학자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최신 연구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기적 실험실 모임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원격업무 도구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정보기술 환경에서 직접적 만남과 우연한 만남이 창의성과 혁신에 끼치는 영향을 공간적으로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한 모색이 깊어지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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