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사람과 디지털
기계 번역 환경의 외국어 학습
기계 번역 환경의 외국어 학습
윤동주의 시 ‘참회록’을 구글 한-영 번역기에 입력해본 결과다.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기존 구글 번역의 품질에 비해 월등히 개선됐다. 구글은 인공신경망 기술을 적용한 결과 기존 번역 오류의 55~85%를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 한 중학생 학부모가 “어차피 컴퓨터가 번역해줄 텐데, 기계도 아닌 내가 왜 고생스럽게 영어를 배워야 하나요”라는 자녀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되느냐고 물어왔다. 한 고교 영어교사는 “시험과 입시 때문에 학생들이 지금 당장은 영어를 공부하지만, 컴퓨터가 번역을 하는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그래도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려면 어떤 학습 동기를 부여할지 난감하다”고 고민을 전해왔다.
# 최근 만난 법학 교수는 20여년 전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가 진로를 바꾼 계기를 말했다. 당시 영어 교수가 “머지않아 기계번역이 발달해 통번역 업무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처리하게 될 것이니 대학원 진학 시 다른 분야를 선택하라”고 추천한 게 진로 변경의 배경이었다. 그는 기계번역이 사람의 번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년 전부터 광범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활용 덕분
단어별 일대일 아니라 문장 통째 번역 기계 똑똑해져도 최종 선택은 사람의 몫
대통령 연설문도 최종 판단은 대통령이 인공지능 번역기술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고 외국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외국어 문서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외국어 학습법과 평가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 사용빈도 낮은 어려운 단어를 외우거나 평가하는 시험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계번역 기술이 곧바로 외국어 학습의 무용론으로 이어진다고 보면 안 된다. 기계번역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외국어와 언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2014년 국내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번역 논쟁이 있었다. 소설의 평범해 보이는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Aujourd’hui, maman est morte)”는 번역의 어려움을 알려준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번역하면 작품 전체의 정서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약성서>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는 구절은 2000여년 전 히브리인들의 주식에 대한 정서를 ‘밥’ ‘떡’ ‘빵’ ‘음식’ 중 무엇으로 번역할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아무리 기계번역이 개선된다고 해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는 기계번역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언어능력, 외국어능력이 필요할지를 묻는다. 언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사고와 표현이 이뤄지는 인간의 본질적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통역, 번역과 같은 부분적 기능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최후의 선택과 결정은 사용자의 몫이다. 마치 대통령의 연설문과 유사하다. 수많은 연설을 하는 바쁜 대통령이 직접 기념사나 연설문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초안을 작성하고, 대통령은 그중에서 결정하거나 수정할 내용을 지시한다. 스피치라이터들이 실무를 맡지만 연설문은 대통령에 따라 방향과 수준 차이가 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외부 개입 과정이 보도되면서 서점가에선 <대통령의 글쓰기> <대통령의 말하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전직 대통령들의 연설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상세히 알려지고 있다. 비서를 누구로 쓸지, 어떤 결과물을 선택할지, 무엇을 수용하고 수정할지 판단하는 일은 오롯이 결정권자의 몫이자 책임이다. 기계번역이나 인공지능 비서를 쓰게 된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부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최종 결정권자가 똑똑하게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과 책임이 더 중요해진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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