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 인수로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사업 이후 바이오 외에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를 결합하는 전장사업에 사운을 건 큰 베팅을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14일 이사회에서 커넥티드카와 오디오 전문 기업인 미국의 하만(Harman)을 인수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인수 가격은 주당 112달러, 총액 80억달러(약 9조4천억원)다. 국내 기업의 외국기업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다.
전장사업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불린다. 전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전기전자장비를 말하며,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의 핵심 부품이다. 미국 지엠(GM)·일본 도요타·독일 베엠베(BMW) 등 완성차 업체들은 첨단기술로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전장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애플과 구글뿐 아니라 국내 엘지(LG)전자도 이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장사업의 지향점인 커넥티드카는 무선통신을 매개로 내비게이션, 원격 제어, 엔터테인먼트, 자율주행 등의 기술 구현을 통해 자동차를 운송수단 겸 첨단 정보통신기기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하만이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보안 등의 전장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이라고 밝혔다. 종업원이 3만명에 달하는 하만은 지난해 매출 70억달러(약 8조2천억원)에 순이익 7억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24%),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2위(10%)를 차지하고 있다.
하만은 자동차 업계에서 오디오 분야 부품업체로 이미 유명한 기업이다. 하만이 보유한 하만카돈·제이비엘(JBL) 등의 브랜드는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삼성은 전장사업에서 매출의 65%가 발생하는 하만은 연매출의 약 3배인 240억달러 규모의 수주잔고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전장사업 시장이 지난해 450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에는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의 전장사업 본격화 배경에는 자사의 정보기술(IT) 역량을 접합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도 있다. 자동차용 정보기술 부품 또는 전기전자 시스템, 텔레매틱스 등이 그렇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완성차사업으로 직접 진출하는 것은 노조와 품질관리 비용 등으로 인해 어렵다”며 “국내에는 현대모비스 외에는 큰 부품업체가 없는데, 전자업체들이 전장부품 경쟁력을 키운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의 경쟁력 확보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이미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이 분야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향후 삼성전기나 삼성에스디아이(SDI) 등 계열사들과 시너지 효과를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단번에 전장업계의 강자로 부상하기 위해 하만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외국 업체들 지분과 프린팅사업부 매각 등으로 현금을 축적해 놓은 상태다.
전장사업팀을 이끌었던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만이 보유한 전장사업 노하우와 방대한 고객 네트워크에 삼성의 정보기술과 모바일 기술, 부품사업 역량을 결합해 커넥티드카 분야의 새로운 플랫폼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만 최고경영자 디네시 팔리월은 “최근 정보기술이 자동차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수한 기술과 폭넓은 사업 분야를 고루 갖춘 기업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주주들 승인 들을 거쳐 내년 3분기까지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수 후에도 현 경영진이 독립적 자회사로서 하만을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