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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이세돌 vs 알파고’, 본질은 ‘알파고 필드테스트’

등록 2016-03-14 14:16수정 2016-03-17 09:52

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을 이긴 뒤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을 이긴 뒤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알파고, 5전 3승 먼저 이뤄 승리했다고?
대국 본질적 목적은 알파고 취약점 찾기
AI, 숨겨진 버그로 치명적 실수 가능성
프로그램 개발이 30%라면, 버그 찾기가 70%
이세돌, 개발진에 취약점 발견 ‘선물’
마지막 대국서 추가 약점 발견될까 주목
지난 10일 5번기로 시작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신의 경지’로 평가받는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의 전적은 3 대 1이다. 이 9단이 3판 내리 지다가 13일 벌어진 네번째 대국에서 첫 승을 거뒀다. 다섯판 가운데 세판을 먼저 이기면 승리하는 것이니, 전적으로만 보면 당연히 ‘알파고 승’이다. 반면 이번 대국의 본질이 알파고의 ‘필드 테스트’였다는 점에 비춰 보면, ‘그냥 이 9단이 맡은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싶다.

사실 알파고 개발자 쪽에서 보면, 이번 대국은 ‘알파고’란 이름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성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숨겨진 오류(버그)는 없는지, 어떤 환경에서 약점을 보이는지, 약점을 들켰을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이 9단과 대결을 통해 알아보려는 성격이 짙다. 바둑 실력이 신의 경지에 이른데다 프로 바둑기사 가운데 가장 변화무쌍한 전략을 구사하는, 알파고 쪽에서 보면 최악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이 9단과 대결을 통해 그동안의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은 약점이나 오류가 있는지를 확인해보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이를 ‘필드 테스트’라고 하는데,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그만큼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럼 처음부터 이 9단한테 ‘지도대국’을 청할 것이지 왜 대결을 벌이게 했을까. 이 9단이 최선을 다하게 하면서 부수적으로 알파고 홍보 효과도 노리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이 9단은 알파고를 우습게 보다가 첫판에서 무참히 진 뒤 독하게 달려들어 네번째 대국에선 이겼다. 앞서 3번의 대국을 하면서 나름대로 파악한 알파고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알파고 개발자 쪽에서 보면, 이번 대국을 통해 진짜 얻고 싶었던 것을 드디어 손에 쥔 것이다.

만약 이 9단이 4번째 대국에서 찾아낸 알파고의 약점이 발견되지 않은 채 이번 대국이 끝났다면, 알파고는 약점을 가진 채 상용화하거나 상용 서비스에 적용됐을 것이다. 이는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영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부를 수 있다.

또한 구글은 이번 대국을 통해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인공지능 발전 생태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동안 인공지능 내지 슈퍼컴퓨터 하면 아이비엠(IBM)이 먼저 꼽혔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통해 구글이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됐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구글이 인공지능의 선구자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됐다. 구글 중심의 인공지능 생태계에 참여시켜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월가의 자본들도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에 기꺼이 돈을 대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미 현대자동차 등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구글과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히는 등 구글을 향한 기업들의 ‘애교떨기’가 시작됐다.

필드 테스트 실체를 제쳐둔 채 대결로만 간주하며 전적을 보면, 이 9단이 약속된 다섯판 가운데 세판을 내줬으니 졌다. 이겼을 때 받기로 한 상금 10억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박사급만 수백명에 이르는 알파고 개발자들이 발견하지 못했고,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결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알파고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 9단이 찾아냈다. 게다가 이 9단의 약점 공격에 알파고는 패닉 상태를 넘어 오작동 모습까지 보였다.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 9단이 맡은 역할을 다했고, 승부로 치면 완승을 거뒀다고 해도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5일 예정된 5번째 대국도 승부는 별 의미가 없다. 이 9단이 알파고의 새로운 약점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알파고를 망신주라는 게 아니라 재앙의 불씨를 없애달라는 것이다.

컴퓨터나 프로그램은 약점이나 버그가 있다고 확인되는 순간 쓸모가 사라진다. 무인자동차에 적용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는 순간 인명사고로 이어진다. 따라서 테스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적용된 알고리즘이 완전 재설계되거나 폐기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알파고 역시 이 9단과 대국을 마친 뒤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프로그램을 짜는 게 3이라고 한다면 오류와 버그를 찾아 수정하는 데는 7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덩달아 이번 대국에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부터 정교해지고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드러났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 대국에서 이 9단은 인간 프로기사들이 잘 두지 않는 행마를 했다. 그러자 알파고가 헤매기 시작했다. 이후 알파고의 행마 중에는 아마추어들까지 “저게 뭐야”라고 놀라는 것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알파고는 아직 미생 수준의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이세돌 9단은 이를 직접 입증하는 큰 공을 세웠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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