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여성 로봇공학자들의 네트워크 모임인 ‘걸스로봇’이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마루180’에서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첫 강연회를 열고 있다. 걸스로봇 제공
여성 로봇공학자·덕후들 모여
국내 첫 네트워크 ‘걸스로봇’ 결성
“논리·감성 아우르는 기술엔
연구자들의 다양성이 필수
그래서 여성 역할 중요” 공감
국내 첫 네트워크 ‘걸스로봇’ 결성
“논리·감성 아우르는 기술엔
연구자들의 다양성이 필수
그래서 여성 역할 중요” 공감
“저도 학부 때 입시 앞두고 어느 과를 갈까 고민했죠. 어머니는 ‘선생님이 최고야. 교대 어떻니?’라고 하셨죠. 그때 한 친구가 ‘공대 갈까?’ 했는데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아무도 (공대에) 갈 수 없다고 한 적 없는데 저는 고민조차 한 적이 없더라구요. 내 옵션(선택권)은 더 넓은데 사회가 제시하는 전형에 갇혀 있던 거예요.”(이동희 독일 뮌헨대 로봇공학 교수)
국내외 여성 로봇공학자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첫 네트워크 모임이 탄생했다. ‘걸스로봇’(Girl’s Robot)이라는 이름의 새 모임은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마루180’에서 최초 모임을 열고 국내외 로봇공학계의 대표 인사 5명을 모아 강연회를 열었다. 바야흐로 무르익고 있는 ‘로봇시대’에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참가자들은 큰 공감을 이뤘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과 점차 정교해지는 기계공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삶의 전반에서 로봇의 역할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로봇 르네상스’ 시기가 오리란 기대가 부풀고 있다. 이날 모임에 강연자로 나선 박혜원(32)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연구원은 “로봇은 사회성을 가미한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예전에는 컴퓨터를 쓰려면 기계에 대해 알고 키보드라도 쓸 줄 알아야 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연결고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사람의 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봇은 그런 시대의 넥스트(차세대)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재 집중하는 분야는 이제 로봇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데 이어 맞장구치거나 눈을 마주치는 등의 반응을 보여 사람도 컴퓨터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로봇이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와 감성을 아우르는 기술이 주목받는 시대에 당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연구자들의 다양성은 필수 요소다. 박 연구원은 “다양한 접근을 하는 집단이 같은 문제에 더 좋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 일색의 집단이 내놓을 수 없는 창의적인 방법이 남녀 혼성의 집단에선 탄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갈 길은 험하다. 지난 30년 동안 국내 로봇공학계 몸을 담아온 ‘왕언니’ 조혜경(51) 한성대 교수(정보통신공학)는 오랜 시간 “로봇공학계의 홍일점”이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한다. 그 만큼 여성의 비율이 극히 낮았다는 소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입시 전문기업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지난 5월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공대생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16.1%에 불과했다. 1965년에는 0.9% 수준이었다고 한다.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에는 남녀의 역할이 따로 없다. “나는 연구와 결혼했다”는 조경은(45) 동국대 교수(멀티미디어공학과)는 “‘여자니까’라는 생각을 버려라. 이는 여성과 남성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여성이 ‘여성이란’ 생각으로 목표를 낮게 잡거나, 남성이‘여성이란’ 생각으로 상대에 선입관을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국내 대표 로봇공학자인 한재권 박사의 아내인 엄윤설(39) 키네틱 아티스트(로봇 등을 활용한 예술가)는 “남녀가 서로가 필요할 때 상대 역할을 돕는 팀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로봇공학과 가정 모두에서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박수를 받았다.
전직 기자이자 자칭 “로봇 덕후”(한 분야에 매진하는 아마추어 전문가)로, 올해 2월 결성된 온라인 모임인 ‘로봇공학을 위한 열린 모임’에서 활동하던 이진주씨가 이번 모임을 주도해 결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봇공학계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남녀 다같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왼쪽부터 조경은 교수, 이동희 교수, 박혜원 연구원, 엄윤설 아티스트.
로봇
조혜경 한성대 교수. 걸스토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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