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16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코먼스 글로벌서밋 2015’에 참가한 전길남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가 각각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코먼스 제공
2015년 현재 인터넷은 전세계 70억 인구의 42%가 넘는 30억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이자 미디어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선택과 목적에 따라 인터넷에 접속하는 이용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터넷은 우리들의 일상과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기본적 환경이 되어 있다. 우리가 깊이 의존하고 있는 인터넷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과 구조가 불가피한가, 더 나은 환경으로 바꿀 수 있는가? 지난 14~16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코먼스 글로벌서밋 2015’에서 인터넷의 미래에 관한 모색이 이뤄졌다. 이 국제콘퍼런스에서 <네트워크의 부> <펭귄과 리바이어던>의 저자이자 공유경제의 핵심이론가인 요하이 벵클러(Yochai Benkler) 하버드 법대 교수와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명예교수가 각각 관련한 주제 발표를 하고 대담을 통해, 더 나은 인터넷을 논의했다. 크리에이티브코먼스는 인터넷 환경에서 창작물의 생산과 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해 저작권 개방 운동을 펼치는, 비영리 국제기구이다. 올해 서울에서 개최된 이 기구의 국제콘퍼런스에서 두 사람이 발표하고 대담한 내용을 살펴본다.
인터넷 대중화되며 ‘폐쇄 커뮤니티’현상페이스북과 중국 인터넷은 ‘갇힌 인터넷’우버 등 공유경제가 거래비용 낮췄지만노동자 지위 약화시키는 결과 가져와 “기술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변화 중요”
■ “현재 인터넷, 최선인가요?”
지난 14~16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코먼스 글로벌서밋 2015’에 참가한 요하이 벵클러 하버드 법대 교수가 각각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코먼스 제공
인터넷은 정보의 접근과 공유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엄청난 편의를 가져왔지만, 많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전길남 교수는 국제적으로 사이버 범죄와 테러가 빈발하고 이용자들은 데이터를 보유한 거대기업들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위협받으며 사이버 폭력과 인터넷 중독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인류는 자동차산업이나 핵기술 등과 같은 글로벌 인프라 구조를 만들 때 미래의 환경이나 국제 거버넌스 시스템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인터넷도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필연적으로 인터넷은 개방된 공간에서 ‘울타리 정원’(월드 가든)이라는 폐쇄형 커뮤니티로 바뀔 우려가 높다. 특히 전 교수는 취약한 사이버 보안이 무엇보다 문제라며 “인터넷에서는 기술적으로 보안을 해결하지 못해, 사이버 공격은 너무 쉽고 이를 방어하기는 너무 어렵게 설계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터넷에는 결국 울타리 정원만 남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억 사용자들이 모여 있는 페이스북과 ‘만리장벽’을 친 중국 인터넷이 대표적인 월드 가든 인터넷이다.
벵클러 교수는 인터넷의 인프라 구조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 아래 자체적인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례에서 드러나듯, 클라우드 컴퓨팅, 앱스토어 등 인프라를 제공하는 소수 거대기업이 새로운 통제세력이 되고 있다. 벵클러는 “인터넷은 정부와 소수에게 감시능력을 부여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게 했다. 집중화된 인프라가 통제와 감시를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의 취약한 보안은 국가 안보 위협과 같은 대중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권력이 광범한 감시와 통제를 합리화하는 배경이 된다.
■ 인터넷은 ‘창작의 공유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환경이 가져온 문제점을 개선해, 더 나은 공유와 창작의 도구로 만들자는 두 사람은 기술적 접근보다는 사회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전 교수는 “인터넷은 개발 당시 기본적으로 개방적 문화였으나 스마트폰 환경에서 점점 더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개방에 신경 쓰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즈니스에 기울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현재의 시장주도적 접근을 다양한 세력들이 함께 참여해 국제적 합의틀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6일에는 두 사람의 대담이 진행됐다. 크리에이티브코먼스 제공
벵클러는 공유경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거래 비용을 낮추고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유경제의 근본은 시장에서의 경제적 교환 체계가 아니라 사회적인 교환 체계라는 걸 강조했다. 그는 “우버 같은 시스템은 소비자들이나 기업엔 혜택이지만 노동자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벵클러는 “기술이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따른 결과”라며 사람들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들에게 가장 큰 불행을 가져오는 게 무엇인지 그 경제적·제도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벵클러는 인터넷의 구조를 논할 때 특정 세력을 악당으로 지목하고 싸우는 근본주의적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방성 관점에서 과거 마이크로소프트는 악당이었지만, 최근 미국 정부의 개인정보 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에서 보듯 사용자 보안 측면에서는 동맹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도 이렇게 상황에 따라 적과 동지의 처지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매번 구체적 상황에서 파악해야 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성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코먼스는 가치가 시장 거래와는 무관하게, 창작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계 동기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저작권 사유화와 권리 보장이 연구개발과 창조성의 핵심 장치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저작권 공유 운동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이고, 인터넷은 이용자가 창작·공유 활동을 펼치는 창조의 공유지로 최적지이다.
벵클러는 창조의 공유지가 인터넷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며 개념 확대를 시도한다. 창조의 공유지 개념을 적용한 공유경제가 자본주의의 최대 문제인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 사례처럼, 개방성과 공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용하기 쉬운 대안적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인터넷에 사회적 속성 및 지구 환경과의 조화 방안을 고려하는 ‘생태적 인터넷’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