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최초의 도구라는 돌칼, 지식의 전수를 가능하게 한 문자, 산업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증기기관? 또는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컴퓨터? 정답이 없는 물음인데, 의외로 세탁기를 꼽는 이들도 꽤 많다.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67)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명쾌한 강연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드문 통계학자이기도 하다. 로슬링은 2010년 테드(TED·기술,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등을 주제로 하는 세계적인 강연회)에서 왜 세탁기가 최고의 발명품인지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가 4살 때 어머니와 할머니는 처음 세탁기를 집에 들여놓고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했다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빨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여성의 가사노동이었다. 세탁기는 여성을 빨래 노동에서 해방시켜 더 아이와 함께 보내고 책을 읽고 다른 일을 찾아 나갈 시간을 주었다. 이는 남녀의 역할과 사회구조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세상은 전과 달라졌다. 그래도 로슬링이 지적했듯이 여전히 인류의 20억명은 땔나무를 나르거나 물을 길어와 빨래를 해야 하는 빈곤선 아래 살고 있지만 말이다.
돌칼·자동차·세탁기·컴퓨터…
인간에게 불친절했던 기술도입 과정
점차 인간 편의와 안전 쪽으로 진화
혁신과 혁신이 거듭되는 기계사회
“기계 자체는 약속 이행하지 않아
옳고 그름 판단은 인간 집단의 몫”
세탁기가 최고의 발명품인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초의 세탁기가 위험한 발명품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불가능해 보인다. 1904년께 등장한 최초의 전기자동세탁기는 모터가 밖으로 버젓이 드러나 있다. 물에 젖은 손을 잘못 갖다 대기라도 하면 감전사고가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다. 건조기는 더 위험했다. 두 개의 롤러가 빨래를 압착하는 식으로 짰는데 세탁물에 손가락이라도 걸려 들어가면 끔찍한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발명가들이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껍데기를 씌운 세탁기를 내놓은 것은 1930년대 들어서의 일이었다.
현대의 우리는 무수한 기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세탁기를 비롯해 텔레비전, 냉장고, 청소기 같은 각종 전자제품이 보통의 가정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런 동력을 사용하는 기계는 물론이거니와 면도기나 식탁, 숟가락 같은 비교적 단순한 도구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물건은 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이 들어간 물건들이다. 숟가락만 잠시 뜯어봐도 알 수 있다. 철을 녹여 매끈한 곡선의 반짝이는 이 도구를 전체 인구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일은 거대한 생산공장과 이를 건설할 수 있는 자본, 세계 각지로 나를 수 있는 유통구조까지 고도의 분업화된 산업사회와 조직이 없다면 태어날 수 없는 물건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엘륄은 “어떠한 사회적, 인간적 또는 정신적 사실도 현대사회에 있어 ‘기술’이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처럼 이해되지 않은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저서 <기술의 역사>를 통해 이런 지적을 내놓은 것이 1964년이었다. 기술의 의미는 이후 현대까지 5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더욱 커졌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이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만큼 기술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커졌을까?
기술 도입의 과정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력적이기도 했다는 것이 수많은 사상가들의 지적이다. 돌도끼를 썼던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기술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기술이 자본주의와 결합해 비약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이루기 시작한 17세기께부터 기계는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만큼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고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비판의 토대로 삼았듯이 산업사회는 기계 공장이라는 생산수단에 인간을 끼워맞추는 식으로 사회를 완전히 재편했다. 인간의 노동력은 마치 기계부품처럼 다루어졌고 이에 걸맞게 교육과 사회조직, 생활의 방식이 직조되기 시작했다. 사적 소유의 원칙 아래 농민은 땅에서 내쫓겨 노동자가 되었고 모든 사회구성물은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서 가격이 매겨져 시장에서 거래됐다. 인간의 정신과 문화도 이런 대량생산의 영향을 깊이 반영하게 되었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1985~1990)는 저서 <기술과 문명>에서 “자본주의는 기계를 사회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사적 기업의 이윤 증대에 이용했고 지배계급의 권력 강화에 활용했다”고 썼다.
이렇게 쏟아져 나온 제품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인간이 제품의 요구에 맞춰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류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78)는 문명의 발전 속도 차이를 다룬 저작 <총 균 쇠>에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뒤집어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동차를 예로 든다. 발명가 니콜라우스 오토가 최초의 가스기관을 만들었던 1866년에는 말과 철도가 육상 운송 필요의 대부분을 잘 충족하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의 불만은 없었다. 1905년까지도 자동차는 부자들이나 즐길 수 있는 “불안정한 장난감”에 불과했는데 상황은 군대가 트럭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트럭 제조업자와 군대는 집중적인 로비활동을 통해 대중에게도 트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켰고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트럭이 운송수단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 시대의 많은 발명품들은 사람의 선택을 받아 발전해왔다기보다는 창출된 선택에 의해 소비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상황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위험했던 최초의 세탁기가 20년 뒤 껍데기를 씌운 제품으로 진전을 이루었듯이 제품들은 느리지만 점차 인간의 편의와 안전에도 귀를 기울이는 쪽으로 점차 진화했다. 자동차 안전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자동차의 개념은 18세기부터 등장했지만 최초의 유압식 브레이크가 도입된 것은 1922년이었다. 1934년 제너럴모터스(GM)는 최초의 충돌테스트를 했고 1956년에 포드는 최초로 안전장치들이 장착된 자동차의 선전에 나섰다. 에어백이 도입된 것은 1974년이다. 미국 정부는 1966년에 자동차 안전을 목적으로 하는 교통국을 설립했는데 교통국의 정책과 방침은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용자들의 목소리다. 개선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 유통되는 식품들에 영양 표시가 명기되기 시작한 것은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았던 1994년의 일이다. 이때야 비로소 장기보존식품, 과자, 빵, 사탕과 초콜릿, 음료수 등에 열량이 얼마나 되고 나트륨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정보가 상품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이후 소비자 요구에 따라 표시 대상 제품은 점차 확대되었고 올해부턴 주류의 원재료가 무엇인지도 대상에 포함됐다. 이런 제도 개선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생산자에게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할 동인과 유익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현대 디지털 기술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는 경향마저 보인다. 반도체회사 페어차일드의 연구원이었던 고든 무어는 1965년 같은 크기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대담한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로 되었고 그의 예상은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런 발전 속도는 마이크로칩의 가격을 급속도로 떨어뜨리고 효율은 높였다. 그 결과는 우리 주머니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이다. 구식 스마트폰이라 할지라도 그 연산능력은 과거 슈퍼컴퓨터를 능가한다.
하지만 이런 빠른 기술의 발전과 변화는 새로운 도전을 암시하기도 한다. 오랜 기술 도입의 역사가 보여주듯, 사용자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기술은 그를 누군가의 올가미에 가둬버릴 수도 있다. 특히 혁신과 혁신이 거듭되어 만들어지는 각종 인터넷 서비스와 디지털 기기들은 복잡한 알고리즘과 메커니즘을 매끈한 표면 뒤에 숨기고 있기 때문에 설계자의 의도와 설정이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보이지 않는 작용은 가장 강한 작용일 수 있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서비스의 속성은 소수 개발자의 설정이 수많은 대중에게 즉각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기술을 둘러싼 변하지 않은 긴장은 기계사회의 위험성을 앞서 예견했던 루이스 멈퍼드의 경고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기술의 옳고 그름은 다름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적 집단이 판가름한다. 기계 자체는 요청을 하지도 약속을 이행하지도 않는다. 요청을 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정신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계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기계를 다시 정복하고 인간의 목적에 종속시킬 수 있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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