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이 백인우월주의소그룹을 폐쇄한 일은 국내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베’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한계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사진은 가면을 쓰고 ‘일베’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한 남자들을 통해 일베 커뮤니티를 나타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레딧
인기 커뮤니티 사이트에 ‘독버섯’ 공존
이용자들 반감커지자, 사이트 정책 변경
백인우월주의 소그룹 폐쇄나 격리
국내 유사 사이트 ‘일베’에도 시사점 일베와 레딧의 커뮤니티 구조는 묘하게 닮았다. 추천 시스템 기반이다. 일베나 레딧의 게시물들은 이용자들의 추천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 게시물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커뮤니티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양쪽 모두 익명성 보장을 중시한다. 레딧은 가입 시 아무런 개인정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입력하면 된다. 일베에서 개인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거나 드러내는 건 금기시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두 사이트가 강하게 중시하는 특성은 자율성이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누구의 검열이나 통제도 받지 않고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권한이다. 물론 이들 특징은 인터넷이 지닌 보편적 특성으로 꼽히기도 하는 점들이다. 두 커뮤니티는 이를 잘 흡수하고 기능으로 구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특성은 선과 함께 악을 잉태했다. 레딧에는 여러 유쾌한 서브레딧들이 다수다. 익명의 사람들이 털어놓은 사연에 아낌없는 충고를 하거나,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에게 대가 없이 중요 정보들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동시에 아동 음란물이나 끔찍하게 숨진 여성의 사진 따위를 올리면서 어두운 쾌락을 탐닉하는 이들도 있다. 일베는 커뮤니티 전반적인 성격이 이런 식이지만 역시 인터넷 자율성의 더러운 골목길이라는 점에서 같다. 자율성이 가진 이런 양면성 탓에 레딧에 변화의 메스를 가져다 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었다. 지난달 레딧의 최고경영자 엘런 파오가 사임했다. 그는 직접적인 이유로 이사회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앞서 일련의 과정은 레딧 이용자들의 자율성을 둘러싼 갈등이 중요한 이유였음을 알게 한다. 파오는 퇴임을 앞두고 레딧에 올린 글에서 “나는 레딧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추한 것을 봤다. 흔치 않은 영감을 받았지만, 추한 것들로 인해 인간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는 앞서 이용자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서브레딧 관리자를 해고했으며, 이는 수많은 레딧 이용자들의 공분을 샀고 광범위한 퇴진운동이 벌어진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파오의 후임이자 레딧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허프먼도 서브레딧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에도 이제는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계속 관철했다. 그는 이번에 5개 백인우월주의 서브레딧을 폐지함과 동시에 타인을 공격하고 다른 이용자들의 불쾌감을 살 수 있는 서브레딧들은 구독자가 아니면 보이지 않게 ‘격리’하는 정책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역시 수많은 이용자들로부터 ‘자유를 억압한다’는 항의 메일을 받았고 게시글을 통해 “사실은 이런 (문제의) 소수 커뮤니티들을 관리하느라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면서 99.98%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신경을 못 쓰기 때문”이라고 해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레딧의 공동창업자인 알렉시스 오해니언은 2013년 낸 책 <그들의 허락 없이>(Without Their Permission)에서 “인터넷은 민주적인 네트워크이고, 모든 링크(웹페이지)는 동등하게 태어났다. 어떤 네트워크(운영자)가 그들에게 질서를 강요하면 붕괴하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렇게 자율을 중시했던 최대 커뮤니티 레딧이 결국 일정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무릎 꿇은 사건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주류 정치세력과 매체들로부터 방조 또는 무시만 받는 상황에서 점점 더 끔찍한 표현과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일베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이유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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