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맛집으로 추천된 식당들. 한겨레 자료사진 (※ 위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없습니다.)
‘소비자 리뷰 게시물’ 토론회
명예훼손 제기땐 포털사 임시 차단
게시자 이의 없으면 30일뒤 자동 삭제
“무분별한 삭제로 표현의 자유 위축”
단순 의견표명·공적 여론 조성 등
임시 차단 예외 ‘가이드라인’ 제안
명예훼손 제기땐 포털사 임시 차단
게시자 이의 없으면 30일뒤 자동 삭제
“무분별한 삭제로 표현의 자유 위축”
단순 의견표명·공적 여론 조성 등
임시 차단 예외 ‘가이드라인’ 제안
요새 어딜 가나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검색하는 일은 거의 필수처럼 잦아졌다. ‘서울 ○○동 맛집’ 하면 각종 음식사진이 빼곡히 들어간 맛집 리뷰들이 무수하게 뜬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맛없는 집’에 대한 결과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맛집이라 해도 막상 찾아가 먹어보면 실망하기도 일쑤다. ‘○○동 맛집’ 대신에 ‘○○동 오빠랑’을 검색해야 더 맛있는 집이 나온다는 웃지 못할 팁도 널리 퍼졌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이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소비자들의 상품·서비스 리뷰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키소)는 14일 서울 강남구 엔스페이스에서 ‘소비자 리뷰 게시물과 표현의 자유’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황용석 건국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무분별하게 삭제되고 있는 소비자 리뷰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황 교수 등 이날 토론회에 참석자들은 인터넷에서 ‘맛없는 집’을 통 찾기 힘든 이유는 그런 리뷰들이 ‘매우 쉽게’ 삭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상고심 재판이 진행중인 제주영어마을 명예훼손 사건은 대표적이다. 제주영어마을에 자녀를 보냈던 일부 학부모들이 2012년 부실한 시설을 지적하며 ‘영어마을 피해자’ 블로그를 개설해 항의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영어마을대표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기와 성폭력, 비리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업체 쪽이 포털사를 상대로 게시물을 내려달라며 ‘임시조치’를 요구했고, 포털사는 이를 들어주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에 다시 게시하였다. 분쟁은 법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보통신망법상의 ‘임시조치’란 게시글 같은 표현물에 대해 당사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요청할 경우 포털사 등이 30일 동안 임시로 포털에서 내려주는 조처다. 하지만 국내에선 임시라기보다 ‘영구 삭제조치’로 작용하고 있다. 포털사 처지에서 보면, 당사자의 항의로 가려주는 경우 책임을 면하지만, 유지하고 있으면 앞서 영어마을 사례처럼 포털까지 휘말려 법정에 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행 임시조치는 게시자의 이의제기가 없는 경우 30일이 지나면 자동삭제된다. 글을 게시한 쪽이 법정 싸움까지 각오할 정도로 계속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비판 글들은 사라지게 된다. ‘맛없는 집’들이 없는 이유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기중 변호사(법무법인 양재)는 “그간 대법원 판례는 소비자 리뷰 글 역시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법리를 세웠는데, 포털을 둘러싼 현실은 아직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돈과 시간 등 자원이 풍부한 성형외과와 맛집 등 사업자는 임시조치를 맘껏 활용해 자기의 평판을 쉽게 관리하는 반면, 소비자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황 교수는 이에 대해 학계·기업·소비자단체 전문가 등 총 15명을 대상으로 델파이조사(전문가 설문)를 벌였다. 조사결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임시조처’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황 교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날 ‘임시조치에 대한 제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은 소비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사실관계가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제품·서비스 등에 대한 사실·의견을 밝힌 게시물이 3가지에 해당하면 임시조치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맛이 없다”, “형편없다” 등 단순 의견만 표명한 경우,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이바지하는 경우, 소비자의 생명, 신체의 위험이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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