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 오픈넷과 하버드 버크먼센터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보매개자 책임의 국제적 흐름’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오성 기자
[사람과 디지털] 버크먼센터-오픈넷 공동주최 토론회
“미국 구글 본사 앞마당에는 공룡 화석 모형이 있다. 구글은 한때 공룡이 되고자 했고 실제 그랬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생각되길 바라지 않는다. 크면 여기저기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아누팜 찬더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로스쿨 교수)
포털 네이버의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조원을 넘는다. 지난 30년간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서는 단연 1위다. 2위는 8조원 규모의 다음카카오로, 역시 인터넷 회사다. ‘네이버’나 ‘카카오톡’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만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구글은 세계 인터넷 검색시장에서 우리나라 네이버와 같은 과점업체다. 인터넷 세계의 공룡과 같은 구글은 최근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찰을 빚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공동체인 유럽연합(EU)이 지난 4월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구글을 제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구글같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을 연결해 주는 이런 서비스들을 중간매개자(intermediary)라고 한다. 고도 정보사회로 바뀌면서 일상생활에서 갈수록 영향을 커지는 ‘중간 다리’들이다.
지난달 28일 중간매개자에 대한 주목할 만한 포럼이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의 인터넷 자유 운동단체인 ‘오픈넷’과 권위 있는 인터넷 분야 연구기관인 미국 하버드대 버크먼센터가 공동주최한 ‘정보매개자 책임의 국제적 흐름’ 포럼이다. 우리 일상을 잠시만 돌아보면 중간매개자의 커진 역할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지인 및 친구들과 의견과 정보, 생활 다반사를 공유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스마트폰에서 네이버를 통해 검색하고 재밌는 영상들을 유튜브를 통해 공유한다. 이런 앱들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내려받는다. 이런 플랫폼들이 모두 중간매개자에 해당한다. 이들의 강화된 역할은 법·사회·경제 등 다방면에서 전에 없던 질문들을 낳고 있다. 버크먼센터는 전세계 연구단체들과 연계해서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른 사례들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수행 중인데 지금까지 미국·타이·터키 등 8개 나라의 사례 보고서가 모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픈넷이 참여단체로 보고서를 냈다.
“페이스북·애플 등 성공 배경에는
관대한 미국법도 주요 역할”
“인터넷에 소통공간 연 매개자에
모든 침해에 책임지우는 것 부당” 이날 포럼에 참여한 세계적 전문가들이 내놓은 서로 다른 방향의 심도 있는 논의는 이 문제가 얼마나 논쟁적인 주제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주요 발제자의 한 명인 아누팜 찬더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미국법의 관대함이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5년 즈음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금융 기업의 이사회실을 상상해 보자. 설립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이 스타트업은 이미 수백만명의 사용자들을 모았다. 지금 적자 상태인데 확장을 위해 현금 수혈이 필요하다. 만약 이 회사가 저작권 침해 방조 혐의로 고소되거나, 법원을 통해 대규모 인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명령을 받았다면 사이트 운영이 가능할까? … 1990년대 미국법 개혁으로 미국 스타트업들은 치명적인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애플·페이스북처럼 차고나 기숙사에서 출발한 작은 기업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결정적인 배경에 미국법의 “관대함”이 있다는 해석이다. 찬더 교수는 “정보매개자들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웹사이트 약관을 넘어선 개인정보 보호의 부재(미국법에는 일반적인 개인정보 보호의 개념이 없다)는 20년간 놀라운 혁신에 대해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문제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표현의 자유는 경제라는 엔진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는 시각이 뒷받침하듯이 실리콘밸리 성공을 본받고자 한다면 이런 미국적 법체계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논지다. 반면 유럽인터넷서비스업자(ISP)협회의 올리버 쥐메 회장은 기업과 법의 관계에 대한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나는 거대기업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의) 적합성은 법원이 결정할 일이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스페인 법원과 구글이 다투는 ‘잊힐 권리’에 대해 내린 판결을 보지 않았나. 앞으로 인터넷 서비스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지만 (법이) 규칙을 정해서 준수하도록 하면 문제없다.”
우리나라 경우는 어떨까? 세계적 논쟁의 흐름에 비해 국가에 의한 책임 부여가 강해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동의 지점이다. 버크먼센터 국제협업연구의 우리나라 책임자인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임시조치가 과도하게 활용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터넷 소통의 공간을 연 중간매개자가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침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인터넷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수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의 상위에 놓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표현 자유를 바탕으로 중간매개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기에는 법리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중간매개자 책임에 대해 한국 사회의 어정쩡한 상황은 미국처럼 과실도 챙기지 못한 채 더 많은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우르스 가서 버크먼센터 소장은 “중간매개자 책임은 상황이 계속 달라지는 ‘움직이는 표적’이다. 최적의 사례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몇가지 제언을 내놨다. “법을 개정하기 전에 중간매개자들의 경제적 동인이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개입할 때는 이유와 시기가 명확해야 한다.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 인권 등 규범적인 측면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관대한 미국법도 주요 역할”
“인터넷에 소통공간 연 매개자에
모든 침해에 책임지우는 것 부당” 이날 포럼에 참여한 세계적 전문가들이 내놓은 서로 다른 방향의 심도 있는 논의는 이 문제가 얼마나 논쟁적인 주제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주요 발제자의 한 명인 아누팜 찬더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미국법의 관대함이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5년 즈음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금융 기업의 이사회실을 상상해 보자. 설립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이 스타트업은 이미 수백만명의 사용자들을 모았다. 지금 적자 상태인데 확장을 위해 현금 수혈이 필요하다. 만약 이 회사가 저작권 침해 방조 혐의로 고소되거나, 법원을 통해 대규모 인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명령을 받았다면 사이트 운영이 가능할까? … 1990년대 미국법 개혁으로 미국 스타트업들은 치명적인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애플·페이스북처럼 차고나 기숙사에서 출발한 작은 기업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결정적인 배경에 미국법의 “관대함”이 있다는 해석이다. 찬더 교수는 “정보매개자들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웹사이트 약관을 넘어선 개인정보 보호의 부재(미국법에는 일반적인 개인정보 보호의 개념이 없다)는 20년간 놀라운 혁신에 대해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문제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표현의 자유는 경제라는 엔진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는 시각이 뒷받침하듯이 실리콘밸리 성공을 본받고자 한다면 이런 미국적 법체계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논지다. 반면 유럽인터넷서비스업자(ISP)협회의 올리버 쥐메 회장은 기업과 법의 관계에 대한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나는 거대기업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의) 적합성은 법원이 결정할 일이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스페인 법원과 구글이 다투는 ‘잊힐 권리’에 대해 내린 판결을 보지 않았나. 앞으로 인터넷 서비스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지만 (법이) 규칙을 정해서 준수하도록 하면 문제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구글 본사에 있는 공룡 화석 모델. 정보를 매개하는 구글은 한때 ‘인터넷 세상의 공룡’으로 불렸지만 이는 최근 유럽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중간매개자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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