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통신시장에 관한 세미나가 이틀 연속으로 열렸다. 11일에는 서울대 경쟁법센터가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와 바람직한 정책 방향’ 세미나를 열었고, 12일엔 같은 대학 공익산업법센터가 ‘ICT 생태계 진화에 따른 방송통신시장 규제의 현안과 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행사 이름은 다르지만 둘이 다루는 내용은 사실상 같다. 휴대전화, 초고속인터넷, 인터넷티브이(IPTV) 등 통신서비스를 묶어 파는 결합상품과 관련해 정부 규제가 어느 선까지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다. 이 세미나들은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로 갈렸다. 전날은 1위 사업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다음날은 규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토론의 주를 이뤘다.
처음 세미나 개최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반겼다. 현재 1위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에 대한 결합상품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결합상품 규제는 가계 통신비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정답을 내놓기 어려운 사안이다. 에스케이텔레콤 쪽은 서비스를 묶으면 가격을 깎아주는 서비스를 규제하는 것은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경쟁제한’이라 주장한다. 케이티와 엘지유플러스 , 케이블티브이 회사 등 이해가 맞부딪치는 반대 진영에선 이대로 놔두면 이동통신시장 과반을 점유한 에스케이텔레콤이 다른 통신서비스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시장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맞선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선 학계와 정책 전문가들이 두 이해집단의 정반대 주장 사이에서 소비자에게 무엇이 가장 이익이될지 해답의 단초를 찾아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는 토론이 실종됐다. 한쪽은 줄기차게 규제 필요성을, 다른 쪽은 반대를 역설하는 데만 치중했다. 학계가 토론장에서 특정 기업을 업고 한 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도가 지나쳤다. 같은 대학의 두 법학단체는 사실상 한 쪽의 목소리를 전하는 교수들만을 모아 각각 행사를 열었다. 기업들은 저마다 자기 쪽에 유리한 세미나 홍보에 나섰다. 결합상품 규제 공론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이른바 ‘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업계 내부에서조차 두 법학단체가 후원 기업들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기업의 학계 후원은 산학 협력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낸다면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협업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전문가들이 현상황에서 정답을 내기 어렵다면 적어도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결합상품 규제는 잘못된 결론으로 통신시장이 재편된다면, 대부분의 국민이 큰 통신비 부담을 떠안게 되는 중요한 주제다. 학문이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취급되는 일련의 상황이 답답한 이유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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