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실명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광범한 지지를 받아 결국 정책 완화를 이끌어냈던 ‘드래그퀸’ 시스터 로마의 사진. 위키피디아와 트위터 갈무리
[사람과 디지털] 페북의 ‘본인 확인’ 어떻게 봐야 하나?
“인터넷이 익명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본인 확인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조합원만 쓸 수 있는 노동조합 게시판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조합원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명제 또는 익명제는 각 서비스 회사나 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스북이 실명 정책을 편다고 해서 왜 법에 맞지 않냐고 비판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기업의 정책 또는 철학이기 때문에 실명을 모을 수 있고, 소비자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업이 개인정보 처리자가 되면 ‘정보수집 최소수준 원칙’에 따라 실명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입증해야 합니다.(입증을 못하면 과도한 정보를 수집해선 안 된다는 뜻) 페이스북의 방침이라고 해서 방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실명을 요구할 수 있는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인터넷 실명제 폐지 3년, 2015년 ‘본인 확인 제도’ 진단 토론회’에서 두 사람의 의견은 날카롭게 갈렸다. 페이스북은 전세계 14억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최대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다.
페이스북, 실명으로만 사용가능
가명 의심 신고하면 “계정 정지”
동성애자들 반발에 사과뒤 ‘예외’ 인정
업체는 사용자 보호 내세우지만
실명 기반한 광고 효율성이 배경
발단은 지난 1월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 편집장인 민노씨(필명)가 당한 일이다. 그는 1월29일 저녁 지인으로부터 “민노씨 페이스북 해킹당했어요?”라는 문자를 받고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러나 접속할 수 없었다. ‘페이스북 이름 표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회사가 계정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민노씨는 “실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년 동안 써오던 서비스에서 아무 통보 없이 쫓겨났다”고 말했다.
그가 첫 사례는 아니다.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드래그퀸(화려한 여성 복장을 하고 공연하는 남성) ‘시스터 로마’ 역시 페이스북 계정이 잠기는 일을 겪었다. 다시 페이스북에 접속하려면 30년 동안 쓰지 않았던 실명 마이클 윌리엄스를 쓰게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는 반발했다. “나는 친구와 소통하기 위해서 이 사이트를 사용한다. 고용주나 미친 스토커가 나를 찾게 되길 원하지 않는다.”(<에스피스트닷컴>과 한 인터뷰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쓰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쓰게 만드는 부당함에 대한 지탄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게이 커뮤니티가 즉각 행동에 나섰고, 많은 이들이 온라인 서명운동으로 동감을 표하면서 페이스북을 향한 비판은 거세졌다.
페이스북은 결국 10월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토퍼 콕스 페이스북 최고제품책임자(CPO)는 페이스북을 통해 “드래그퀸과 드래그킹(남장 여자), 나아가 엘지비티(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모든 친구들이 겪은 일에 대해 사과한다. 정책을 개선해 전에 쓰던 이름을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이런 방식으로 익명 계정을 제거해온 건 오래된 일이다. 콕스는 “사용자에게 체육관 회원권, 도서관 출입증, 우편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 이름을 증명하도록 하는 정책을 써온 지가 10년이 넘는다. (드래그퀸 사례처럼) 최근 피해를 입는 집단이 나타날 때까지 이 정책은 잘 적용돼 왔다”고 밝혔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페이스북이 약관에서 실명을 쓰도록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가명으로 가입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 대해 가명 의심 신고를 하게 되면 그 계정을 막고 실명 확인을 요구하는 식이다. 콕스가 밝힌 바로 이런 신고는 한 주에만 수십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 회사가 이런 정책을 내세우는 취지는 커뮤니티의 보호다. 이 시스템을 통해 온라인 괴롭힘, 스토킹, 증오 발언 등의 문제를 차단해왔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설명이 전부는 아니다. 실명 정책은 페이스북의 사업모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2012년 8월 페이스북은 계정 가운데 실명을 쓰지 않는 가짜 아이디를 8300만으로 추산해 발표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페이스북 주가는 주당 38달러에서 곤두박질쳐서 20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실제 사용자의 정보를 아는 것은 이 회사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래야 더 효율적인 광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권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인터넷 기술 덕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숨죽이고 살던 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익명성의 그늘에 숨은 증오 발언, 사이버폭력 등의 문제도 함께 가져오게 되었다. 페이스북이 지금과 같은 거대 네트워크로 성장하게 된 배경도 이와 연관이 있다. 페이스북은 처음부터 실제 사람과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네트워크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익명의 나쁜 점에 문제를 느끼던 이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 최소화 원칙에 대한 페이스북의 대응은 ‘우리 네트워크는 이런 정체성으로 성장해 왔다’는 쪽이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가 일상이 되면서 이전의 정책을 고수하기 힘들게 양상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페이스북 정책은 전세계 14억 인구에 영향을 미치고, 그중에는 민노씨나 시스터 로마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 이상이 되어버렸기도 하다. “좋아서 쓰나요? 지금까지 관계와 기록이 모두 남아 있는 서비스인데 하루아침에 쫓겨난다고 생각해 보세요.”(민노씨)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가명 의심 신고하면 “계정 정지”
동성애자들 반발에 사과뒤 ‘예외’ 인정
업체는 사용자 보호 내세우지만
실명 기반한 광고 효율성이 배경
지난 1월 실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갑자기 페이스북 사용이 중지된 ‘민노씨’가 당시 페이스북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친구와 나눴던 개인적인 대화들도 접근이 막혔다. 슬로우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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