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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감정을 배우니…‘사람은 무엇인가’ 깊은 물음

등록 2015-03-09 20:08수정 2015-03-10 10:02

구글의 로봇 제작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달 9일 로봇개 ‘스팟’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윤리 논쟁이 일었다. 자세의 안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발로 찬 모습에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이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발전이 결합하면서 전에 없던 도덕 문제들이 나타난다. 유튜브 영상
구글의 로봇 제작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달 9일 로봇개 ‘스팟’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윤리 논쟁이 일었다. 자세의 안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발로 찬 모습에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이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발전이 결합하면서 전에 없던 도덕 문제들이 나타난다. 유튜브 영상
[사람과 디지털]
“기계와의 관계 긴밀해질수록
사람은 어떤 모습이 돼 갈까?”
로봇에 무엇을 채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몫
주부 윤복희(61)씨는 팔이 아플 때면 가끔 로봇청소기를 돌린다. 납작한 원반처럼 생긴 이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 구석구석을 쓸고 다닌다. 하지만 결국은 침대나 소파 밑 구석에 박혀 꼼짝달싹 못하기가 일쑤다. 윤씨는 “혼자 애쓰다 그렇게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구글이 공개한 한 동영상이 세계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 윤리 논쟁을 붙였다. 로봇개가 사무실과 주차장을 걸어다니는 영상인데, 얼마나 안정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직원이 발로 찬 게 문제가 되었다. ‘스팟’이라는 이름의 이 로봇이 차이고 자세를 유지하려 버둥거리는 모습은 여느 네발짐승과 비슷하다. 한 누리꾼은 “개를 발로 찬다는 것은, 설사 로봇개일지라도 매우 잘못된 일로 보인다”고 트위터에 썼다. 반면 다른 누리꾼은 “망치를 차는 게 문제가 되나? 바위는? 종이상자는?” 하고 반문했다.

사람은 사물에 쉽게 감정을 불어넣는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와 마리아네 지멜이 수행한 1944년 심리 실험은 이 분야의 고전이다. 연구자는 피험자들에게 영화를 한 편 보여줬다. 흰 바탕에 검은색 삼각형과 동그라미 등이 돌아다니는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은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했다. 그들은 영화 속 큰 삼각형이 작은 삼각형을 ‘쫓는다’고 말했고, 또 쫓기는 삼각형이 ‘두려움’을 느껴 ‘달아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단순한 도형을 쉽게 의인화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청소기나 로봇개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는 6월 독일 베를린에서 오페라 무대에 오를 예정인 인공지능 로봇 ‘미온’의 모습.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극장 누리집 갈무리
오는 6월 독일 베를린에서 오페라 무대에 오를 예정인 인공지능 로봇 ‘미온’의 모습.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극장 누리집 갈무리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기계에 대한 인간의 의존은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높아져 간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셰리 터클 사회학과 교수는 2011년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이런 변화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그는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물범 모양의 로봇을 나눠주고 변화를 관찰했는데, 그들이 로봇에 대해 키운 애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노인은 이것이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애착이 생겨 로봇을 반납하지 않으려 버텼다. 터클 교수는 지적한다. “기술의 미래에 관해 우리가 현재 집착하고 있는 사안들 뒤에는 아직 제기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기술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기계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질수록 우리가 어떤 모습이 돼갈까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이미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청소기나 애완 로봇의 경우가 제한적이라면, 스마트폰은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애착의 대상이다. 구글이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지난 3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60%는 모바일 인터넷을 포기하느니 술과 커피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스마트폰의 기능 가운데에는 단순한 기기 이상인 것도 있다. 예컨대 아이폰의 음성 비서 ‘시리’는 사람 말의 상당 부분을 알아듣고 반응을 보인다. 일종의 관계맺음이다.

오는 6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로봇이 오페라 무대에 설 예정이다. ‘미온’이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이 무대를 위해 지금까지 1년3개월 동안 맹연습 중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놀이동산이나 박물관의 공연 로봇을 생각한다면 로봇이 맹연습을 한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정해진 노래를 재생하고 그에 맞춰서 동작을 짜는 건 기술자인 인간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미온의 경우는 다르다. 말 그대로 로봇의 연습이다. 미온은 스스로 학습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로봇을 연습에 함께 참여시켜 마치 아이에게 하듯 여러 설명을 해준다. 미온은 열심히 데이터를 모은다. 독일 신문 <디 차이트>의 보도를 보면, 현재 1살 지능인 미온이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줄지는 개발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미온과 같은 인공지능 로봇 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의 양상을 전환시킨다. 터클 교수가 나눠준 물범 로봇은 사람 말에 단순한 반응을 보이는 정도의 사회적 기능을 지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말을 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하는 현재 로봇의 기능이 눈속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소리가 들리면 반응하도록 짜여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로봇개가 차여도 아픔을 느끼진 않는다는 게 상식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의 유대나 의존은 청소기나 물범 인형에게 느끼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들의 생애(50년 이내) 안에 인간과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능력의 인공지능을 인류가 만들어내리라고 예측한다. 우리를 뛰어넘는 지능의 존재라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개미처럼 여기진 않을까? 석학 스티븐 호킹이나 실리콘밸리 창업자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은 이것이 “재앙”이 되리라고 경고한다.

미온에게 노래를 가르치듯이, 로봇에게 윤리를 가르쳐야 할 시기가 조만간 다가올지 모른다. 국내 대표적인 로봇기업인 ‘로보티즈’의 김병수 대표이사는 “로봇은 융합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리는 껍질만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는 인문학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간된 <왜 로봇의 도덕인가>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강조한다. “이 도전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체인지를 이해하는 데 의미심장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로봇에 구현하는 데 필요한 단계적인 절차를 세세하게 밟아가며 도덕적 결정이 내려지는 방법에 따라 사고하는 연습은 자기이해의 과정인 셈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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