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쉴러 애플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 지난달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플린트센터에서 열린 새 제품 공개행사에서 기존 아이폰에 견줘 화면크기를 키운 ‘아이폰6’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
[사람&디지털] 애플 ‘업데이트 게이트’가 남긴 것
생활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들
축복의 원천이자 재앙의 뇌관
소프트웨어 의존도 커질수록
사회 위험도 덩달아 커질 것
책임 주체 규명도 쉽지 않아
생활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들
축복의 원천이자 재앙의 뇌관
소프트웨어 의존도 커질수록
사회 위험도 덩달아 커질 것
책임 주체 규명도 쉽지 않아
지난 5일은 스티브 잡스의 3주기 기일이었다. 그의 독창성과 카리스마 아래 애플은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 세상을 매혹시킨 디지털 기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그러나 잡스 사후 3년을 맞는 애플의 심정은 편치 않다. 그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앉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야심차게 선보인 새 스마트폰 아이폰6+와 새 운영체제 아이오에스8(iOS8)이 나오자마자 ‘벤드게이트’ ‘업데이트게이트’ 등 각종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103.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애플 주가는 게이트 발생 직후인 25일 97.88달러로 떨어졌고 여전히 100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1위인 애플의 시가총액 가운데 30조원가량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벤드게이트는 애플이 기존의 ‘작은 화면 스마트폰’ 기조를 버리고 새로 선보인 5.5인치 큰 화면의 아이폰6+가 쉽게 휘어지는(bend) 점을 비꼰 말이다. 손으로도 쉽게 구부릴 수 있다는 영상이 유튜브 등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가 실제 실험해본 결과를 보면 전화기가 약하긴 하나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이폰에 대한 공격에는 과장된 면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업데이트게이트였다. 애플은 아이폰6 공개와 더불어 새 운영체제인 아이오에스8을 공개했는데 ‘헬스킷’이라는 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는 사소한 버그가 있었다. 애플은 이를 고치려 8.0.1 업데이트를 실시했는데, 오히려 아이폰이 이동통신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못하는 등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한 것이다. 애플은 1시간 만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전 버전으로 되돌려 쓰도록 안내하는 치욕을 겪었다.
스마트폰 세상을 열어젖힌 애플이 일으킨 이번 소란은 소프트웨어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프트웨어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전세계 17억명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그 관계를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구실을 했을 뿐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3일 한 소방방재 회사의 임원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여러 국가기관에 화재 방지를 위한 불꽃감지기를 만들어 납품했는데, 경찰이 작동 실험을 한 455개 가운데 332개가 불능이었다. 기술력이 부족한 이 기업은 제품이 작은 빛에도 오작동을 일으키자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감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런 불량제품은 각종 문화재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원자력발전소에까지 쓰였다. 기계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불이 났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전을 비롯한 각종 기반·생산시설 관리의 상당 부분을 소프트웨어에 맡긴 지 오래다.
국내 스마트폰 커뮤니티에선 애플의 이번 오류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업데이트를 했더니 랙(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걸려 환장하겠다” “무서워서 (새 버전으로) 못 올리겠다” 등이다. 연락처부터 메신저, 소셜네트워크까지 오늘날 우리 관계를 유지하는 총체인 스마트폰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중은 신경증적 불안을 보인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뇌공학)는 “소프트웨어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우리는 한순간 자신의 데이터를 잃거나 빼앗길 수 있는 데이터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권력자들이 개입한 큰 스캔들을 일컫는 말인 ‘게이트’를 민간회사의 제품이 드러낸 버그들 뒤에 붙인 자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삶의 소프트웨어 의존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위험도 함께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컴퓨터 자동화의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다. 구글은 무인자동차 기술이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왔다고 자신하고 있으며 포드와 벤츠, 베엠베(BMW) 등 굴지의 자동차업체들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 저술가 니컬러스 카는 최근작 <유리감옥>에서 “앞으로 수년 동안 우리는 운전과 관련된 더 많은 책임이 사람으로부터 소프트웨어로 이동되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라며 “무인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킨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라고 물었다. 만약 운전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게이트를 일으킨다면 불만이 터지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는 저서 <위험사회>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사회에서 위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지며 책임 주체를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우리와 직접 관계를 맺었던 대상들 사이에 소프트웨어가 자리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핸들과 우리 사이에 운전 알고리즘이, 시설과 관리자 사이에 자동화 시스템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개입하는 식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인류는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한 경험이 있다. 사람이 성찰 없이 기술을 사용한다면, 이는 ‘사용당해진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는 효율을 높여주지만 우리가 자신을 무분별하게 내맡길 경우 디지털 사회의 위험은 더 은밀하고 치명적이 된다는 지적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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