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을 자고 있는 이용자.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람&디지털] 빠르고 편리한 생활 대신 배려와 그리움 얻다
“짜장면 시키신 부우우운~” 외침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대중화 열풍은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 스마트폰 보유율로 이어졌다. 1997년 2세대 이동통신 도입 전 300만명 수준에 불과하던 가입자는 올해 초 5400만명을 넘어섰다. 이미 인구를 뛰어넘는 휴대전화의 수다.
이 와중에 ‘정보화 사회 필수품’을 휴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의 성화에도 꿋꿋이 버티며 휴대전화 없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지키는 이들이다. 휴대전화가 밥벌이에 필수적인 생활인이나, 자신의 분신과 정체성 도구로 여기는 젊은 세대에겐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무선 네트워크의 왕국’ 밖에서 느끼는 경험은 성 안의 우리에게 잊었거나 또는 몰랐던 다른 시야를 밝혀준다.
지난 18일 조효제(53)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를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휴대전화를 지닌 적이 없다. “무슨 철학이 있기보단 혼기 놓친 노총각 같은 거예요.” 휴대전화를 안 쓰는 사람이 수도승 같지 않을까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조 교수는 최신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다. 새 폰이 나오면 동료 교수였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와 “새벽까지 전자우편으로 논할” 정도였다 한다. “점점 눈만 높아졌어요. 고르다 보니 없이 사는 데 익숙해졌죠.”
어떤 스마트폰 살까 고민하다
없는 생활 익숙해진 조효제 교수
쓰다가 없앤 뒤 금단증상 겪은
시인 안도현씨와 가수 김창기씨
‘번호 감춘다’ 오해받은 김기원 교수 주변 사람들 불평은 더 커졌지만
없이 사는 노하우와 생존법 터득 안도현(53) 시인과 가수 김창기(51)씨는 쓰다가 없앤 경우다. 안 시인은 금단 증상을 겪었다. “일주일 정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중요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했고요.” 이후 해방감이 찾아왔다. “평소 휴대전화 때문에 생기던 대화의 단절이 생각났죠.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들고 부탁하고 호출하는 휴대전화는 예의 없는 기계예요.” 언제나 연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그에 따른 책임 또는 고통도 떠안긴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창기씨가 휴대전화를 없앤 이유도 여기에 있다. “쓰지 않게 된 이유는 환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개원 초기 환자들에게 자살 충동이 들 경우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라고 했죠. 환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매일 밤 자살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번호를 지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나를 언제나 ‘연결 상태에 두겠다’는 표현이다. 연결이 당연해지면서, 오해도 생겨났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방문교수 생활 중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에서 종종 오해를 샀던 기억을 떠올린다. “휴대전화를 사주겠다고 말한 친구도 여럿이죠. 특히 불평이 심했던 이들은 기자들이었습니다. 몇몇은 내가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자신에게만 번호를 안 가르쳐준다고 생각했죠.” 김창기씨는 “응급실에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는데, 결과적으로 자살과 관련된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는 일은 거의 사라졌죠. 휴대전화가 있으면서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환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줄 수 있기에 다시는 쓰지 않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스마트 시대’에 주변의 불평은 더 커졌다. “모임이 있으면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많이 알리더군요. 처음에는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하다가 점차 뜸해졌죠. 그쪽은 부담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괜한 수고 시키는 게 아닌가 서로 미안한 거예요.” 조 교수의 말이다. 카톡을 쓰는 이가 돌아볼 부분도 있다. “제 아내가 동창들과 카카오톡을 많이 합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아내가 카카오톡을 하고 있기에, 아내를 빼앗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생활을 침해받는다고 느낄 때도 있죠.” 김창기씨의 말이다. 메신저에서 자료정리·일정관리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폰이지만, 이들은 나름의 노하우와 생존법을 터득했다. 김기원 교수는 일본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가 고안한 ‘초정리법’을 활용하고 있다. 초정리법이란 분류에 공을 들이기보다 발생 시점에 따라 기록을 정리하는 정보관리법을 말한다. 김 교수는 “중요 통화는 노트에 바로 기록한다. 새 연락처는 적어두었다가 컴퓨터 파일에 정리하고 출력해서 수첩에 붙이는 식으로 업데이트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안 시인은 요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 창구가 늘었다. 조 교수는 비상연락을 위해 늘 동전을 잔뜩 챙기는 버릇이 있다. 그는 “저처럼 공중전화를 쓰다 보면 버튼만 눌러봐도 관리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된다”며 웃었다. 이들은 속도와 편리를 얻는 대가로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한다. 배려와 그리움이다. “성적 소수자처럼 모바일 소수자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연결에 제한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죠. 점점 사라지는 공중전화와 ‘네가 폰을 쓰면 된다’는 시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조 교수의 말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 곁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 다닐 때 전보나 편지밖에 없었지만 부모님과 저 사이의 끈은 느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어찌 보면 케케묵은 감정이 이어주고 있었으니까요. 스마트폰은 그런 원초적인 그리움을 봉쇄하는 역할을 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말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왼쪽부터 조효제 교수, 시인 안도현씨, 가수 김창기씨, 김기원 교수 (출처/한겨레DB)
없는 생활 익숙해진 조효제 교수
쓰다가 없앤 뒤 금단증상 겪은
시인 안도현씨와 가수 김창기씨
‘번호 감춘다’ 오해받은 김기원 교수 주변 사람들 불평은 더 커졌지만
없이 사는 노하우와 생존법 터득 안도현(53) 시인과 가수 김창기(51)씨는 쓰다가 없앤 경우다. 안 시인은 금단 증상을 겪었다. “일주일 정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중요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했고요.” 이후 해방감이 찾아왔다. “평소 휴대전화 때문에 생기던 대화의 단절이 생각났죠.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들고 부탁하고 호출하는 휴대전화는 예의 없는 기계예요.” 언제나 연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그에 따른 책임 또는 고통도 떠안긴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창기씨가 휴대전화를 없앤 이유도 여기에 있다. “쓰지 않게 된 이유는 환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개원 초기 환자들에게 자살 충동이 들 경우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라고 했죠. 환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매일 밤 자살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번호를 지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나를 언제나 ‘연결 상태에 두겠다’는 표현이다. 연결이 당연해지면서, 오해도 생겨났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방문교수 생활 중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에서 종종 오해를 샀던 기억을 떠올린다. “휴대전화를 사주겠다고 말한 친구도 여럿이죠. 특히 불평이 심했던 이들은 기자들이었습니다. 몇몇은 내가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자신에게만 번호를 안 가르쳐준다고 생각했죠.” 김창기씨는 “응급실에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는데, 결과적으로 자살과 관련된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는 일은 거의 사라졌죠. 휴대전화가 있으면서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환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줄 수 있기에 다시는 쓰지 않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스마트 시대’에 주변의 불평은 더 커졌다. “모임이 있으면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많이 알리더군요. 처음에는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하다가 점차 뜸해졌죠. 그쪽은 부담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괜한 수고 시키는 게 아닌가 서로 미안한 거예요.” 조 교수의 말이다. 카톡을 쓰는 이가 돌아볼 부분도 있다. “제 아내가 동창들과 카카오톡을 많이 합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아내가 카카오톡을 하고 있기에, 아내를 빼앗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생활을 침해받는다고 느낄 때도 있죠.” 김창기씨의 말이다. 메신저에서 자료정리·일정관리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폰이지만, 이들은 나름의 노하우와 생존법을 터득했다. 김기원 교수는 일본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가 고안한 ‘초정리법’을 활용하고 있다. 초정리법이란 분류에 공을 들이기보다 발생 시점에 따라 기록을 정리하는 정보관리법을 말한다. 김 교수는 “중요 통화는 노트에 바로 기록한다. 새 연락처는 적어두었다가 컴퓨터 파일에 정리하고 출력해서 수첩에 붙이는 식으로 업데이트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안 시인은 요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 창구가 늘었다. 조 교수는 비상연락을 위해 늘 동전을 잔뜩 챙기는 버릇이 있다. 그는 “저처럼 공중전화를 쓰다 보면 버튼만 눌러봐도 관리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된다”며 웃었다. 이들은 속도와 편리를 얻는 대가로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한다. 배려와 그리움이다. “성적 소수자처럼 모바일 소수자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연결에 제한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죠. 점점 사라지는 공중전화와 ‘네가 폰을 쓰면 된다’는 시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조 교수의 말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 곁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 다닐 때 전보나 편지밖에 없었지만 부모님과 저 사이의 끈은 느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어찌 보면 케케묵은 감정이 이어주고 있었으니까요. 스마트폰은 그런 원초적인 그리움을 봉쇄하는 역할을 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말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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