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에서 인간을 누르고 우승한 아이비엠(IBM)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
플리커의 @아니루드 쿨(Anirudh Koul)
[사람&디지털] 현실화하고 있는 인공지능
그녀는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똑똑한데다 넘치는 재치, 상대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배려까지, 누구나 원하는 요소를 완벽히 갖췄다.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이 없는 할리우드 공상과학(SF) 영화이면서도 20만이 넘는 이례적인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그녀>의 여자 주인공 ‘사만다’이다. 사만다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그녀>는 이혼을 앞둔 외로운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체제(OS) 사만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기계와의 사랑이라면 비디오게임 캐릭터와 결혼한 일본의 오타쿠처럼 일반 정서와 동떨어진 일쯤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과 컴퓨터 연인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밀당(밀고 당기기)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능이란, 존재란 무엇인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은 1950년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논문을 <마음>(Mind)이라는 잡지에 발표한다. 과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질문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른 탓이다. 튜링은 이 추상적인 문제를 구체적인 검증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제시했다. 기계와 인간을 각각 방에 들여보내고, 검증인은 밖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만약 검증인이 둘 중 어느 쪽이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기계가 승리한다. ‘튜링 테스트’라고 불리는 이 개념이 나온 지 64년 만에 지난 7일 첫 통과 기계가 등장했다. 13살 아이를 연기한 유진 구스트만이란 이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눈속임일 뿐이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정교한 알고리즘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로 그럴싸한 답을 출력한 것에 불과하지, 의식이 없다는 지적이다. 생전에 제기된 비슷한 반박에 대한 튜링의 답은 이렇다. “자신 말고 다른 이의 감정을 알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의식의 신비로운 점은 인정하지만…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답하기 위해 그 신비까지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지능 역시 뇌라는 방에서 고유의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기능일지 모른다.
인공지능 기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다
눈속임 불과하다는 반박 있지만
인간과 기술은 이미 공생관계다 로봇과 인간 사이 가까워지면서
애착 관계 맺는 현상도 나타났다
진정한 인간성은 무엇인지 살펴
미래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영화 <그녀>가 제기하는 질문도 여기서 비롯한다. 이혼 서류를 앞에 둔 테오도르의 아내는 운영체제와 사귀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당신은 (사람의) 감정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고 쏘아붙인다. 이에 그는 사만다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가 다시 마음을 돌리게 되는 계기는 친구의 말이다. “우리는 (지구상에) 잠시 있을 뿐이야. 나는 지금의 행복을 붙잡겠어.” 사만다가 어떤 존재인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테오도르는 뛰어난 컴퓨터에 속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와 나 사이에 관계가 실재한다면 그것을 좇는 것이 인간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 역시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현실은 어떨까? 기술의 빠르고 누적적인 발전을 고려하면 사만다는 결국 모습을 드러낼 것이지만, 시기를 두고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기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은 5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지난해 민관연 합작으로 ‘엑소브레인’이라는 한국형 인공지능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1980년대 각광을 받은 인공지능은 당시 기술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나, 근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공지능 회사들을 사들이고 있으며 중국 ‘바이두’도 최근 전장에 뛰어들었다. 아이비엠(IBM)은 ‘왓슨’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이미 상용화에 접어들었다. 2011년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누르며 주목을 받은 왓슨은 인간의 사고를 증강하는 보조장치로서 쓰임새를 인정받고 있다. 의료와 요리 분야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정지훈 경희대 사이버대학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인류는 사만다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간과 기술은 이미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애플의 음성 비서 ‘시리’는 높은 음성인식률에 가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셰리 터클 교수는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말벗을 하라고 시험삼아 로봇을 나눠주었다가 그들이 특별한 애착 관계를 맺는 현상을 관측했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는 “지적 활동 가운데 30%는 인공지능이 건네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기술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과소평가하는 한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일까? 정지훈 교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이 부상하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존재와 함께 사는 시대의 도래는 피할 수 없다.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고, 미래 세대에 교육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현기 실장은 “일자리 감소, 개인정보 침해 등 다가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통과한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다
눈속임 불과하다는 반박 있지만
인간과 기술은 이미 공생관계다 로봇과 인간 사이 가까워지면서
애착 관계 맺는 현상도 나타났다
진정한 인간성은 무엇인지 살펴
미래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영화 <그녀>가 제기하는 질문도 여기서 비롯한다. 이혼 서류를 앞에 둔 테오도르의 아내는 운영체제와 사귀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당신은 (사람의) 감정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고 쏘아붙인다. 이에 그는 사만다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가 다시 마음을 돌리게 되는 계기는 친구의 말이다. “우리는 (지구상에) 잠시 있을 뿐이야. 나는 지금의 행복을 붙잡겠어.” 사만다가 어떤 존재인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테오도르는 뛰어난 컴퓨터에 속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와 나 사이에 관계가 실재한다면 그것을 좇는 것이 인간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 역시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현실은 어떨까? 기술의 빠르고 누적적인 발전을 고려하면 사만다는 결국 모습을 드러낼 것이지만, 시기를 두고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기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은 5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지난해 민관연 합작으로 ‘엑소브레인’이라는 한국형 인공지능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1980년대 각광을 받은 인공지능은 당시 기술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나, 근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공지능 회사들을 사들이고 있으며 중국 ‘바이두’도 최근 전장에 뛰어들었다. 아이비엠(IBM)은 ‘왓슨’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이미 상용화에 접어들었다. 2011년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누르며 주목을 받은 왓슨은 인간의 사고를 증강하는 보조장치로서 쓰임새를 인정받고 있다. 의료와 요리 분야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정지훈 경희대 사이버대학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인류는 사만다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간과 기술은 이미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애플의 음성 비서 ‘시리’는 높은 음성인식률에 가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셰리 터클 교수는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말벗을 하라고 시험삼아 로봇을 나눠주었다가 그들이 특별한 애착 관계를 맺는 현상을 관측했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는 “지적 활동 가운데 30%는 인공지능이 건네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기술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과소평가하는 한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일까? 정지훈 교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이 부상하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존재와 함께 사는 시대의 도래는 피할 수 없다.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고, 미래 세대에 교육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현기 실장은 “일자리 감소, 개인정보 침해 등 다가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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