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곰티브이 스튜디오에 모인 국내외 관객들이 스타크래프트2 팀전(GSTL) 결승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곰티브이 제공
중독대상 포함 법안 논란속
‘게임문화’ 다양한 진화해와
치맥 즐기며 야구 보듯 함께
중계장, 외국인 관광명소로
‘게임문화’ 다양한 진화해와
치맥 즐기며 야구 보듯 함께
중계장, 외국인 관광명소로
게임에서 파생된 대표적 문화 콘텐츠인 이(e)스포츠 문화가 최근 함께 모여 즐기는 방향으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게임 안에 갇히기보다는 게임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연결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이다. 동시에 이스포츠 종주국으로서 한국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이스포츠란 게임과 같이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서 승부를 겨루는 경기를 말한다.
이는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함께 중독물질로 규정한 ‘중독법’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과 게임업계의 최근 공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법을 대표 발의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중독에 힘들어하는 분들을 국가가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이지, 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모두 중독자로 몰아가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말했다. 반대쪽에선 게임을 마약이나 도박과 동급에 두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게임을 중독과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바닥에는 ‘기본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게임은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존재이고, 특히 아이들을 이것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오래된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여기에는 남들과 단절한 채 모니터 앞에서 몰두하는 외톨이의 이미지가 따라오기 일쑤다. 이런 속성이 게임에 있음도 사실이지만, 변화하는 이스포츠 문화는 게임의 다른 면에 주목하게 한다.
■ 함께 즐기니 기쁘지 아니한가 지난 8월12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도 서울 대치동 곰티브이(TV) 강남스튜디오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 모이니 100여명이나 된다. 이들은 게임업체 ‘넥슨’의 인기 온라인 게임인 ‘도타 2’의 세계 경기 결승전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이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신분은 다양해도 공통의 취미로 모인 이들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뜯으며 자유롭게 경기를 시청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런 관람 문화는 ‘펍스톰프’라는 이름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마치 펍(술집)에서 야구 경기를 보듯 여럿이 모여 함께 떠들며 경기를 관람하는 식이다. 함께 모여 인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관람하는 방식도 ‘바크래프트’(바와 스타크래프트)란 신조어를 낳을 정도다. 곰티브이 이무현 과장은 “휴일 낮에 부부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올 정도로 최근 국내 관람 문화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 개발사인 ‘블리자드’가 팬들을 위한 축제로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블리즈컨’에는 2만5000여명의 게이머가 모이기도 했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스타크래프트2 프로 게이머를 가리는 ‘WCS 글로벌 파이널’을 함께 즐겼다. 이 대회 초대 챔피언은 한국의 김유진 선수가 차지했다.
1999년 첫 시작 뒤로 이스포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팬과 선수의 특별한 유대도 싹튼다. 올해 ‘WCS 코리아 시즌 3’ 우승자인 백동준 선수의 경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1년 게임단 ‘화승 오즈(OZ)’의 해체로 에스티엑스(STX) 소울(SOUL)로 팀을 옮겼고, 에스티엑스가 기업의 위기로 지원을 끊으면서 또다시 후원을 잃었다. 이때 팬들이 손을 내밀었다. 팬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 유니폼, 로고 디자인, 신발 등을 선물했다. 백 선수는 기대에 우승으로 보답했다.
■ “이스포츠 때문에 한국 유학 택해” 국경이 없는 게임 세계의 특성상 경기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인뿐만 아니다. 곰티브이 강남스튜디오의 경우, 시즌 때 하루 평균 관람객 100명 가운데 20%는 외국인이다. 유학생, 영어강사 등 거주인뿐 아니라 이스포츠를 보러 일부러 한국을 찾은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지난 10월 서울 광진구 악스홀에서 열린 ‘WCS 코리아 시즌 3’ 결승전을 찾은 올리비에르 루소(27·스웨덴)는 “한국이 이스포츠로 유명했기 때문에 한국에 유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포츠가 왜 유명해졌는지 알기 위해선 한국을 꼭 와봐야 한다고 주변에 권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결승전 관객 1500명 가운데 200명이 외국인이었다.
세계적인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배급하는 라이엇게임즈는 12일 2014년 세계 챔피언십 경기를 한국에서 개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스포츠연맹 상임이사인 오주양 그래텍 상무는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즐기던 게임 문화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현실에서 공유하고 소통하는 디지털 레저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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