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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인간의 기억용량, 디지털 기록으로 ‘무한확장’

등록 2012-08-27 20:17

지난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에서 개발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대학생 팀이 개발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에서 개발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대학생 팀이 개발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보관리 모바일 앱 ‘에버노트’
이미지 글자인식·검색기능 가능
기록 편의성에 이용자 3800만명
‘완벽한 기억 건설’ 기대 있지만
‘잊혀질 권리 약화’ 등 우려도
‘당신이 손에 쥔 ‘제2의 두뇌’를 이용해 모든 것을 기억하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대중화로 사람이 기억하고 정보를 관리하는 구조에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는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돼 오던 만능 기억장치가 소비자용 상품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걸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 ‘모든 것을 기록하라’의 상품화 에버노트는 모바일 기기에 설치하는 응용프로그램(앱)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서와 사진 등 파일을 입력하고, 이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저장·관리하는 서비스다. 정보 생산과 이용이 늘어나 지나치게 많은 정보로 인한 부작용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효율적 정보관리를 목표로 내세운 서비스다. 2008년 미국에서 필 리빈이 창업한 이후, 이용자가 3800만명을 넘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사용자 콘퍼런스와 개발경진대회(해커톤)를 통해 저변을 확산시켜가고 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지난 3월 한국 에버노트 해커톤 우승팀인 이진우씨(한양대)팀 등 개발자들이 에버노트의 공개 개발도구(API)로 만든 프로그램 발표와 함께 요리, 음식,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법 강의가 열렸다.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으로 메모를 하면서 그 문서에 바로 사진을 찍어 넣고 음성도 함께 녹음할 수 있는 등의 기록 편의성, 이미지 글자인식, 검색 기능이 특징이다. 현지에서 만난 홍순성 국내 에버노트 앰버서더는 “각종 상품 영수증이나 조리법 등 개인적 메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디지털 환경에서 서랍 정리 기능의 정보관리 도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버노트는 생산성 도구를 넘어서 디지털 환경에서 기존 기억과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에버노트는 ‘모든 것을 기억하라’를 구호로 내걸고, 편리한 도구를 제공해 점점 더 일상을 기록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날 리빈 에버노트 최고경영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에버노트는 인생의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추진된 마이크로소프트(MS) 리서치의 연구프로젝트인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며 “연구프로젝트 10년 뒤에 나온 에버노트는 같은 아이디어를 품고 있지만 사용성을 높여 일반 이용자용 서비스 상품인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

■ ‘완벽한 기억’의 빛과 그늘 마이라이프비츠 프로젝트는 전자우편, 메신저, 메모, 만난 사람, 대화와 전화통화 내용 등 사람이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정보를 카메라 등을 이용해 휴대용 기록장치에 저장하는 ‘라이프로깅’이다. 불완전한 인간기억을 대체할 ‘완벽한 기억’의 건설이 목표다. 수년 동안 목에 카메라와 저장장치를 걸고 생활하며 실험에 참여한 엠에스 연구소의 고든 벨 수석연구원이 지은 책 <디지털 혁명의 미래>(원제 토털 리콜)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빌 게이츠 엠에스 창업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만약 우리가 모든 정보에 즉시 접근할 수 있어, 어제만이 아니라 두드러기가 나기 전 일주일 동안 먹었던 모든 음식을 의사에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장밋빛 기대를 드러냈다.

완벽한 기억에 대한 추구는 1945년 배니바 부시가 인간 기억 확장장치로 구상한 ‘메멕스’로 거슬러올라간다. 메멕스는 오늘날 하이퍼링크를 통한 월드와이드웹으로 구현됐다. 1999년 스튜어트 브랜드와 대니얼 힐리스가 설립한 롱나우(LongNow)재단도 1만년 뒤까지 보존될 기록과 사고방식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기억으로 생겨나는 변화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컬러스 카는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올해 초 입법 추진방침을 밝힌 인터넷에서의 ‘잊혀질 권리’도 디지털 환경에서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기록(개인정보)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했다.

‘모든 것을 기록하라’는 리빈은 낙관적이다. 그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수첩에 번호를 기록하고 찾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이었다”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얼굴을 보고 사람을 식별하는 수천년 동안 익숙한 방법이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기억은 우리의 인지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두뇌가 좀더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도울 것이라는 게 그의 기대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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