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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텔레파시로 운전하는 휠체어…이제 후진만 남았다

등록 2011-12-26 20:35

지난 14일 스위스 로잔의 국립로잔공대 바이오엔지니어링연구소 톰 칼슨 박사가 뇌파를 이용해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지난 14일 스위스 로잔의 국립로잔공대 바이오엔지니어링연구소 톰 칼슨 박사가 뇌파를 이용해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뇌파감지 장치’ 선도하는 스위스 로잔공대 가보니
두뇌에 전극연결 뇌파 감지…생각만으로도 기기 작동
인공손·인텔리전트카 등 연구…“인식률 향상이 과제”
뇌파감지 장치(EGG)를 달고 휠체어에 앉은 톰 칼슨 박사가 아무런 기계적 조작이나 음성명령 없이 머릿속에서 왼쪽 방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휠체어는 좁은 복도에서 장애물을 피해 왼쪽으로 돌아 전진했다. 뇌파로 전동 휠체어를 조작하며 복도를 지나 옆방으로 이동한 칼슨은 다시 출발한 자리로 정확하게 되돌아왔다.

지난 14일(현지시각) 스위스 로잔의 국립 로잔공대(EPFL) 바이오엔지니어링연구소에서 이 대학 호세 델 밀란 교수 연구진이 시범을 보인 내용이다.

척수 마비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머릿속 생각(텔레파시)만으로 각종 기기를 움직이는 게 가능할까?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꿈의 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뇌파 감지장치를 통해 기기를 조작하는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Computer Interface) 연구가 실용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로잔공대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다. 15년째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를 해온 밀란 교수는 “휠체어 운전만이 아니라, 장애인이 뇌파로 가정 내 로봇을 조종해 자신의 몸처럼 로봇을 부리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이라며 “아직 명령이 100% 완벽하게 작동하진 않지만, 인식률을 더 높여 활성화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휠체어를 뇌파로 조종한 칼슨은 두뇌에 전극을 연결하는 장치를 착용한 것만이 아니라, 휠체어를 타기 3시간30분 전부터 컴퓨터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뇌파 감지 작동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두뇌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류를 감지해 이를 컴퓨터가 인식하도록 해, 기계적 명령으로 바꾸는 게 기본구조다. 컴퓨터가 조종자의 뇌파 특성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작동시키는 사람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기계가 감지할 수 있는 명확한 뇌파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훈련을 거쳐야 한다. 현재는 초보적 단계다. 전진, 좌우 회전의 뇌파는 인지하지만, 후진은 인지하지 못한다. 머릿속에 동시에 여러 생각이 엉켜 있는 경우에 뇌파의 명령은 어떻게 인식될까? 칼슨은 “현재의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복잡한 인간 사유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뇌에서 운동을 관장하는 부분에 연결되어 운동 방향을 인지하는 방식”이라며 “훈련을 거친 사람은 몇 분 만에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15년째 뇌파로 기기를 작동시키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 연구소의 호세 델 밀란 교수가 연구중인 인공 손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15년째 뇌파로 기기를 작동시키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 연구소의 호세 델 밀란 교수가 연구중인 인공 손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융합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전동 휠체어는 각종 카메라와 자동 길안내 장치를 통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도중에 탑승자가 뇌파로 새로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칼슨 박사가 최근 개발한 기술은 휠체어가 캐비닛이나 의자와 달리 책상을 향해 갈 때는 책상 밑까지 휠체어가 진행한 뒤 멈추도록 하는 등 외부 물체의 특성에 따라 휠체어가 각각 다르게 작동하게 해준다.

밀란 교수는 이날 손목을 잃은 사람이 착용해 작동시킬 수 있는 인공 손(의수)도 선보였다. 밀란 박사는 “곧 실용화되길 희망하지만 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하고, 인공 손의 경우 사소한 실수라도 치명적일 수 있는 만큼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뇌파를 활용한 인텔리전트 카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밀란 박사 팀은 지난 9월 일본의 닛산자동차와 함께 4년짜리 공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운전자 뇌파를 감지해 운전자가 운행 도중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는 게 목표다.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도로 정보 및 교통상황을 통해 파악된 것과 달리 운전자가 위험한 선택을 하려 할 경우 이를 기기 조작 전에 감지해 사고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닛산자동차는 지난 9월 “닛산은 이미 인텔리전트 크루즈, 거리 감지 조종, 이동 물체 감지 기술을 개발해 적용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로잔공대팀과 협업하고 있는 닛산의 루시앙 게오르게는 “뇌파 분석은 운전자의 운전 스트레스를 감소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대중적 실용화를 위한 기술을 제공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도요타·혼다 등 자동차 업체들도 뇌파를 활용한 휠체어와 로봇 등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지능형 차량 개발을 향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참여로 척수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오던 뇌파 작동기술 연구가 힘을 받고 있다. 로잔(스위스)/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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