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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포털의 ‘주민번호 포기’ 선언…인터넷실명제 ‘흔들’

등록 2011-12-21 16:59수정 2011-12-22 06:40

개인정보 잇단 유출·규제 실효성 논란 커지자
주요 포털·게임업체 모두 주민번호 수집 포기
방통심의위는 SNS심의조직 신설 ‘계속 역주행’
인터넷 기업들이 앞다퉈 ‘주민번호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실명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21일 국내 최대 온라인게임사 넥슨은 보도자료를 내어 “내년 4월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개인정보 저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네이버와 다음이 “더이상 주민번호의 이용과 보관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은 조처다. 최근 엔씨소프트와 네이트가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것을 고려하면 국내 3대 포털과 양대 게임사가 모두 주민번호를 포기한 셈이다.

 네이트 싸이월드 3500만명, 넥슨 1320만명 등 올 하반기 들어 발생한 대형 개인정보 침해 사고와 피해가 그동안 인터넷 업계의 주민번호 이용·수집 관행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들이 잇따라 주민번호를 버림에 따라,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국내 고유의 인터넷 규제 정책들이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대표적인 게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주민번호와 실명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돼 있는 인터넷 실명제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7년 7월 도입된 이후, 인터넷에서 표현 자유를 억누르며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유출시키는 주범이자 인터넷 서비스를 우물 안 개구리로 제한하는 규제란 비판을 받아왔다. 현 정부 들어 하루 방문자가 10만명을 넘는 사이트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며 업체와 사용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2009년 4월 구글 유튜브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막는 실명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 국적 사용자들의 업로드 기능을 폐쇄해, 전 세계에 한국 인터넷 규제 실태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인터넷 실명제의 모순점은 점점 커졌고, 국내 업체들이 인터넷 실명제에 정면 도전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인터넷에서 사용자들에게 국내 서비스만 쓰라고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국외 서비스의 이용이 늘어났다는 점은 규제의 실효성 논란을 불렀다. 정보기술 인터넷언론인 <블로터닷넷>은 지난해 4월 실명제 대상이 되자,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실명확인 뒤에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도 없다”며 게시판을 폐쇄하는 ‘실명제 불복종’을 하기도 했다. 이후 블로터닷넷은 기사에 대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의 댓글을 가져와 기사와 연결시키는 ‘소셜댓글’을 선보이며, 실명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실명제를 조롱하는 격인 소셜댓글에 대해서도 실명제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법률 검토 등을 벌였으나, 지난 4월 실명제 대상 사이트를 발표하면서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실명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규모 국내 사이트의 게시판은 주민번호와 이름을 통해 본인 확인을 거치라고 요구하면서 영향력이 막대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대해서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방통위가 규제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방통위 스스로 실명제를 국내 일부 기업에만 적용되는 허울뿐인 규제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콘텐츠 심의와 차단을 맡고 있는 방통심의위원회의 최근 강경 정책은 현실적으로 국외 서비스를 차단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 방통위의 현실적인 판단과 대비된다. 방통심의위는 이달초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심의하기 위한 별도의 전담조직 신설을 강행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대해서도 심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업들의 잇단 주민번호 포기에도 불구하고 사회관계망 서비스까지 심의해 차단하겠다는 규제 정책은 국내 인터넷 환경을 고립시키는 것은 물론 외신들로 하여금 한국을 대표적인 인터넷 탄압국으로 소개하도록 만들고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기존 통신정책은 경쟁정책, 공정거래, 보편적 서비스 등 독점적 채널을 보유한 사업자에 대한 규제이나, 인터넷에서의 규제는 최종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와 직결된 인권의 문제가 된다”며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이유로 당국이 이를 규제하려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게 실명제였다”고 지적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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