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원공급 사이트 탈퇴화면. 무조건 죄송하다며 상품권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사이트 화면 캡처.
보일듯 말듯 노출돼 찾기 어려워…아예 없는 사이트도
탈퇴뒤 휴대폰 입력은 왜?…이런 끈적이는 이별이라니
탈퇴뒤 휴대폰 입력은 왜?…이런 끈적이는 이별이라니
회사원 A모씨는 네이트·싸이월드의 사상 최대 규모(3500만명) 개인정보 유출 소식을 듣고, 인터넷 정보 정리에 나섰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들어가지 않는 사이트에서 회원탈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싼 상품 하나 사려고 회원가입했던 쇼핑몰, 무료 이용권이 생겨 가입했던 사이트, 정보유출로 문제가 된 사이트… 모두 들어간 지 2~3년은 된 곳들이다. 오랫동안 소원하던 사이트는 막상 떠나려 하자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회원 탈퇴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별’에는 예의가 필요하다. 많은 사이트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 ‘회원 탈퇴’ 어디서 하는 거야?
영세한 기업의 사이트의 경우 ‘회원탈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회원탈퇴에 목숨 건 A씨, 전화를 건다. 당황해하는 직원들. “사이트 만든 사람이 퇴사해서요.” 전화 건 뒤 회원탈퇴는 이루어졌다.
보통 ‘회원 탈퇴’하기 위해서 사이트를 몇 번이나 뒤져야 한다. ‘회원탈퇴’라는 글자는 페이지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요령은 ‘개인정보’로 가는 것이다. ‘회원 탈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곳도 많다. 그런 경우 ‘서비스 해지 신청’이라는 것을 주로 사용한다.
한 음원공급 사이트의 경우 ‘마이페이지’에 ‘나의 개인정보 수정 → 비밀번호입력 창에 입력’하면 창이 뜨는데 ‘개인정보 수정’이라는 큰 글자 아래 서브 메뉴로 ‘연하게’ 회원탈퇴가 보인다. 그러고 나서도 바짓가랑이를 붙든다.
■ 그래도 탈퇴하시겠습니까?
같은 음원공급 사이트에서 ‘탈퇴’를 누르자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고객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과하며 한달 무료 이용권을 준다. 한달 무료 이용권에 제공 공지는 커다랗게 화면을 차지하고 아래에 작게 ‘그래도 회원 탈퇴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면 ‘불편함이 있으셨습니까’라고 묻고 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를 길게 나열해서 보여준다. 마우스를 아래로 죽 끌어내리면 ‘잠깐’이라며 회원의 마일리지 내역을 보여준다(‘마일리지 0원’이다ㅠㅠ). ‘축적된 마일리지를 쓸 수 없는데’ 그래도 탈퇴하겠냐는 것이다.
한 포털 사이트의 경우는 ‘확인할 사항’을 길게 보여준다. 확인할 사항이라기보다는 ‘광고’다. 이런 서비스가 있고, 저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서비스 나열한 글의 아래에는 ‘돌아가기’ 버튼만 크게 있다. 요금제들을 박스로 설명한 끝에 ‘해지신청’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고도 해지하고 나면 탈퇴 밑에 ‘핸드폰 번호 입력’란이 있다. 떠날 거면, 전화번호라도 남겨줘. 마지막까지 ‘정보수집’이다. 이런 끈적이는 이별이라니.
■ 진짜 탈퇴할거야?
떠나는 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남아 있는 마일리지 등으로 하는 ‘협박’이 일반적이다. 마음속에 한가닥 남은 ‘추억’이 미끼다. 도토리가 얼만데, 캐쉬가 얼만데, 강냉이가 얼만데, 당신이 모은 모든 정보가 삭제될 텐데, 나중에 복구해달라면 안 해줄 건데….
모 대기업쇼핑몰은 회원 탈퇴 후에는 30일간 재가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종의 ‘벌칙’이다.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은 회원 메일이 갈 수 있다’고 ‘동의’하라고 한다. 참 복잡한 이별의 속내.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탈퇴를 몇 번이나 누르고 ‘정말 탈퇴하시겠습니까’ 팝업창에 여러 번 ‘그렇다’고 답했음에도 사이트 화면은 변함이 없었다. 3번을 반복해서 탈퇴 버튼을 누르고 나자 사이트의 메인화면으로 바뀌었다. 헤어지고도 모른 체하고 전화하는 연인? 어떤 쇼핑몰 사이트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창이 확 꺼졌다. 신경질 내며 확 돌아서버리는 연인?
■ 탈퇴 확인하고 인쇄해서 보관하라
한 프로그래머는 회원탈퇴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미스클릭을 유도하거나 호객을 하는 등의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탈퇴 버튼을 구석에 숨기거나 팝업페이지로 숨기는 것도 일반적이다.” 그는 현재의 회원탈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또는 국내 잘나가는 기업은 회원유지보다 회원 컬리티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전환 중이다. 가입만 하고 회사에 수익을 주지 않는 고객, 과다한 크레임 고객, 구매가 없는 고객 등은 탈퇴를 유도하고 고수익 후보 고객군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마케팅 정책이 필요하다.” 회원 가입을 기본으로 사이트를 구성하는 ‘기본 틀’도 문제다. “뚜렷한 수익모델 없이 개인회원 수가 자산이던 인터넷 사업 초창기의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한 보안업체 전문가는 ‘탈퇴와 개인정보 삭제’를 알려주고 그 기록을 보관할 수 있도록 인쇄(프린트)를 유도하는 사이트가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탈퇴와 정보 삭제에 대한 안내문을 보여주고 사이트에서 그 내용을 보증해야 한다. 회사의 보안상의 책임이 명시되어야 한다. 제휴 사이트의 정보까지도 삭제 여부를 알려주어야 한다.” 이용자는 그 내용을 인쇄하고 보관해두는 게 좋다.
■ 도용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개인정보 유출 뒤 사이트 가입에 주민번호가 도용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사이트에서 회원탈퇴하기 위해서는 귀찮은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쌍방간에 자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원은 비밀번호를 모르고, 사이트 담당자는 본인인지 모른다. 이런 경우 주로 주민등록증을 팩스로 보내는 절차를 요구한다. 개인정보를 도용당했는데, 주민등록증까지 보내야 한다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에 맞춰서 불안을 노리는 산업도 한창 부흥 중이다. 검색 사이트에 ‘회원가입’이라고 치면, 거대한 포털의 회원가입 사이트가 아니라 ‘개인정보 도용을 체크’하는 사이트가 뜬다. A씨는 근무 중 열심으로 회원 탈퇴를 하던 오후에 “한 달에 650원, 1년에 7800원으로 회원정보를 보호하는 은행권 인증 서비스” 가입 권유 전화를 받았다. 도용을 확인하려면 개인정보를 남겨야 하는데, 불안하다.
보안 전문가는 “도용 확인 사이트가 피싱사이트가 아니라는, 또는 피싱에서 자유롭다는 보장이 없다. 공공기관 말고는 믿지 말라”고 말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개인 도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회원탈퇴에 휴대폰 번호 입력란을 둔 사이트.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탈퇴가 되지 않는다. 옆에 고객센터 서비스 번호를 남겨놓았는데, ‘정회원만 가능’하다고 강조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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