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단말기 ‘미니텔’
보급형 단말기 900만대 보급
빠른 인터넷 시대선 뒤처져
빠른 인터넷 시대선 뒤처져
정보단말기 ‘미니텔(사진)’이 등장 30년 만에 사라진다. 미니텔에는 두 얼굴의 정보단말기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때 프랑스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국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글로벌 정보기술 혁명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킨 ‘인터넷 시대의 공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1982년부터 미니텔을 운영해온 프랑스텔레콤은 지난 22일 “구닥다리가 된 미니텔을 2012년 6월30일 없애버린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5일 “미니텔은 30년 동안 토스터 크기의 화면(9인치)으로 인터넷 혁명을 겪었다”며 “문자 전용, 단순한 그래픽과 굼벵이 같은 속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도 3000만유로(450억원)를 벌어 85%를 콘텐츠사업자에 돌려줬다”고 전했다. 1990년대 말 프랑스텔레콤에 10억유로(1조5000억원)의 매출을 안겨주던 시기에 비교할 수는 없더라도 미니텔은 여전히 통신회사에 수익성 있는 사업이다. 오랫동안 미니텔은 훌륭한 국가 정보화 도구이자 통신사 최고의 수익모델로 여겨져왔지만, 통신사는 ‘철거’를 결정했다.
미니텔의 성쇠는 국가와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정보통신기술 서비스가 국가 주도로 글로벌 환경에 맞서게 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초 미니텔은 1970년대 말 다가올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국책 사업이었다. 국민이 정보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종이 소비를 줄이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됐다. 미니텔은 기능이 단순한데도 인터넷 서비스를 경험하기 전까지 정보화 단말기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다이얼로그라는 채팅 서비스의 인기가 높았고, 열차표·공연 예약, 날씨 예보, 등이 주요 서비스였다. 세계가 인터넷 혁명을 체감하고 있던 2002년 미니텔 단말기는 900만대 보급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미니텔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2000년대 이후 프랑스인들은 가정마다 미니텔 대신 개인용컴퓨터(PC)를 구입하고, 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앞서 당시 프랑스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미니텔이 인터넷 시대 프랑스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보급형 정보단말기로서 미니텔의 구실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값싸고 단순한 단말기 덕분에 프랑스 농촌지역에까지 보급될 수 있었으며, 가정에 보급된 미니텔 단말기를 해킹하면서 정보기술을 익힌 프랑스 인터넷 기업가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얘기도 있다.
국내에서도 미니텔을 본뜬 시도가 있었다. 1990년대 초 당시 체신부와 한국통신은 1996년까지 전국에 300만대의 정보검색 단말기를 보급한다는 계획 아래 ‘하이텔 단말기’를 보급했다. 하지만 애초 계획의 10%도 못 되는 28만대를 보급하고 계획은 끝내 백지화됐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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