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시인이 본 디지털 음악
여러 해 클래식 음악방송을 진행해온 음악애호가 김갑수 시인은 3만여장의 엘피(LP)판을 소장한 개인작업실 ‘줄라이홀’을 만들 정도로 아날로그 음악에 빠져 지내지만, 디지털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나는 시디(CD)와 엘피를 모두 사용하지만, 엘피는 음악 감상을 위한 절차가 번거로워 마음먹어야 틀게 된다”고 말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한’ 엘피 음반 듣기는 그 복잡한 과정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늘’ 듣는 게 애초 불가능한 소리다. 양적으로도 적게 섭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엘피의 번거로움은 소리의 가치를 소중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례가 됐다.
김갑수 시인은 “디지털 음악은 편리해진 만큼 과잉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소중하게 여겨온 본래의 가치를 왜소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삶이 디지털로 가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흐름지만,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던 것이 한낱 소비상품으로 전락한 것을 보는 느낌이다.
그는 음향기술 발달에서 최신 디지털 기술의 기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한다. 진공관 방식의 스피커 등 초기의 오디오가 여전히 가장 우수한 편이고, 돌비의 잡음제거 기술이나 5.1채널과 같은 입체음향 기술 역시 영화 등에서 주로 쓰이지 ‘음질’을 따지는 음악 애호가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조미료처럼 뭔가를 인공적으로 더해 맛을 내는 기술이 처음엔 환호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꾸미지 않은 알맹이를 직접 체험하는 게 소중하다는 경험이 음악에서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시디가 등장한 초기에는 리코딩 마스터링 과정에서 잡음을 빼는 게 당연하게 수용됐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잡음을 제거하지 않는 게 일반적 제작방식이다.
하지만 디지털 음향으로 음악적 체험을 시작한 사람은 아날로그 소리에 대한 감각이 무디기 때문에, 현재의 디지털 음악이 제한된 소리이자 본디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힘들다.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세대에 의해 밀려나는 게 운명이다.
디지털 음악도 본디부터 있던 소리의 아날로그적 특성을 더 닮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파일을 담는 플래시메모리의 한계와 가격 때문에 음질이 낮은 엠피3가 사실상의 표준으로 채택됐지만, 최근의 사용환경은 더이상 저용량 기술표준을 고집해 음질을 포기할 이유를 줄였다. 김 시인은 “산업화 초기엔 인간의 물리력을 극복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으나 이후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의 지속가능한 개발이 중요해진 것처럼, 디지털 또한 인간의 생래적인 것과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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