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 내 국가안보실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관련 논의를
몰래 엿들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해, 국내 언론들이 미국 정보기관 행위를 전하면서 쓴 표현이 ‘불법 감청’와 ‘도청’으로 나뉘었다. 감청은 무엇이고, 불법 감청과 도청은 어떻게 다를까.
네이버 어학사전에 따르면, 감청은 ‘기밀을 보호하거나 수사 따위에 필요한 참고 자료를 얻기 위하여 통신 내용을 엿듣는 일’을 가리킨다. ‘불법 감청’은 감청에 ‘위법한’이란 뜻을 가진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감청을 불법으로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도청은 ‘남의 이야기, 회의의 내용, 전화 통화 따위를 몰래 엿듣거나 녹음하는 일’을 일컫는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 법률에선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감청이란 용어가 있다. 통비법 제2조 7항에 ‘“감청”이라 함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문언·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8항에는 ‘“감청설비”라 함은 대화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사용될 수 있는 전자장치·기계장치 기타 설비를 말한다. 다만, 전기통신 기기·기구 또는 그 부품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 및 청각교정을 위한 보청기 또는 이와 유사한 용도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 중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은 제외한다’고 돼 있다.
10일 네이버 어학사전, 통비법 조항, 통비법 운용 부처 관계자 및 정보인권 단체 활동가의 설명을 종합하면, 감청은 법적 근거를 갖고 남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통화란 음성통화, 전자우편(이메일), 문자메시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개인간 통신 수단을 망라한다. 예를 들면, 국가정보원이나 국군방첩사령부가 국가안보와 군사기밀 보호 목적으로 주요 인사들의 통화를 감청하는 게 대표적이다. 불법감청은 국정원과 방첩사 등 법적으로 감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곳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사람의 통화를 몰래 엿듣거나 법원 영장(내국인 대상)과 대통령 승인(외국인) 같은 법적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감청을 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간첩 혐의가 있거나 군사기밀을 빼돌릴 가능성이 없는 정치인 등 일반 시민 사찰 목적으로 통화 내용을 몰래 엿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청은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한 기관이나 개인이 남의 통화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걸 말한다. 네이버 어학사전의 도청 뜻풀이에는 통화 내용 뿐만 아니라 ‘회의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반면 감청은 ‘통신 내용’을 몰래 엿듣는 것으로 국한돼 있다. 한마디로 도청은 법 테두리 밖에서 벌이는 행위이고, 회의 내용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심부름센터(흥신소) 등이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대화·통화 내용을 몰래 엿듣거나, 기업이 경쟁업체 비밀을 빼내기 위해 통화·회의 내용을 몰래 엿듣는 행위가 도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미국 정보기관이 우리나라 국가안보실 논의 내용을 몰래 엿들은 행위는 도청과 불법감청 중 어디에 해당할까. 전문가들은 “미국 쪽 시각과 한국 시각이 다를 수 있다”고 짚는다. 우선 미국 쪽 시각으로 보면, 미국 정보기관 활동 근거 법에 국외 대통령실 등의 회의·통화 내용을 몰래 엿듣는 것까지 수행 업무 범위에 들어 있으면 ‘감청’이 된다. 또한 몰래 엿듣는 대상에 한국 등 동맹국 대통령실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감청을 했으면 ‘불법 감청’이 된다. 다만, 이것은 철저히 미국 쪽 시각이다.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면, 국내 법에 미국 정보기관이 우리나라 정부기관 사람들의 통화 내용을 몰래 엿듣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면 감청이다. 법에서 허용한 범위를 넘었거나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면 불법 감청이다. 하지만 국내 법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몰래 엿들었으면 도청이다. 유일하게 감청을 규정하고 있는 통비법에는 외국 정보기관의 감청을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
그럼 왜 미국 정보기관이 우리나라 대통령실 내 국가안보실 논의를 몰래 엿들은 행위를 전하는 국내 언론들의 표현이 불법 감청과 도청으로 나뉘었을까. 일단 이번 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를 그대로 번역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에 대한 예의로’ 도청 대신 불법 감청이란 표현을 썼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적었을 수도 있다. 도청이 법률 밖 용어라는 점을 들어 통비법에 있는 불법 감청 용어를 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보인권 단체 활동가는 “미국 정보기관이 유럽연합 국가나 멕시코 등을 상대로 이런 행위를 했을 때는 국내 언론도 불법감청이라고 써도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며 “하긴 미국 변호사와 국내 변호사가 쓰는 용어도 다르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한겨레>에 “미국 정보기관이 국가안보실 회의 내용을 몰래 엿들은 것인지, 아니면 국가안보실 사람들의 통화 내용을 몰래 엿들은 것인지가 아직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회의 내용을 엿들었으면 분명하게 도청이고, 우리나라 법이 국외 정보기관의 내국인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 않으니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해도 도청”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