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동물의 언어와 표현방식을 해석하는 데도 획기적 돌파구를 열까?
스마트폰 앱 장터엔 2020년 출시된 고양이 언어 번역기 ‘미야오톡’(
<그림>)이 판매중이다. 전세계 8000여명이 이용하고 별점을 줬는데, 평균 4.7점(만점 5)이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인간 언어를 자동번역하는 단계를 넘어, 동물의 소통방식을 인간 언어로 번역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2호에는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을 대비해 골든디스크가 실렸는데 외계인과 소통방식도 과제였다.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는 40년 연구 끝에 꿀벌의 춤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꿀벌이 원을 그리거나 8자 모양으로 비행하며 꿀이 있는 꽃의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였다. 이후 사회적 동물들의 소통방법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확대됐다.
■ 꿀벌 박쥐 돼지 닭 쥐 울음 ‘일부 해독’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지난 3월 인공지능으로 돼지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감정 상태를 92%의 정확도로 읽어냈다는 연구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었다. 돼지 411마리의 음성파일 7400여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홍콩 시티대 연구진은 닭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닭의 울음소리를 97% 정확도로 분석해냈다는 논문을 지난 6월 <영국왕립 인터페이스학회 저널>에 실었다. 가축의 울음소리를 통해 스트레스 정도를 알아낼 수 있으면, 사육환경을 개선하는데 유용하다.
요시 요벨 텔아비브대 교수팀은 이집트 과일박쥐들의 음성대화를 번역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016년 12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75일간 박쥐 22마리의 24시간을 기록해 7마리의 암컷박쥐가 낸 1만5천여개 음성을 모으고 발성 뒤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분석했다.
박쥐들은 먹이, 쉴 곳, 잠, 원치 않는 짝짓기 시도 등 주로 4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진은 시스템을 통해 전체 음성의 71%에 대해 어떤 박쥐가 낸 소리인지, 전체 음성의 61%에 대해서 어떤 내용인지 파악이 가능했다고 공개했다. 미 워싱턴대 연구진은 사람의 가청범위를 넘어선 쥐들간 의사소통 소리를 초음파 영상으로 포착해 위험 회피나 짝짓기 신호임을 파악했다는 연구결과를 2019년 1월 <네이처>에 발표했다.
높은 지능을 지닌 사회적 동물인 고래 중에서도 가장 큰 이빨고래인 향유고래를 대상으로 소통법을 해독하기 위한 야심찬 학제간 연구프로젝트(CETI·
개념도)가 가동중이다. 고래들은 내부의 공기주머니를 조절해 특유의 소리를 내는데, 음성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어려워 지금까지 연구 진척이 더뎠다. 동물의 의사소통은 사람 언어와 어휘·구문·문법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과 연관성을 밝혀내는 게 관건이다. 데이터 수집과 패턴 발견에 로봇공학과 심화신경방 방식의 인공지능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기대다. 연구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이비드 그루버는 지난 6월 <라이브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향유고래의 소통방식은 연구하기 너무 어려운 과제였지만, 지금은 인공지능·로봇·드론 등을 이용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으로 향유고래의 소통법을 해독하려는 시도는 고래만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에 대한 연구를 혁신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도전적인 연구의 여정에서 얻게 될 성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21년 4월호에서 “아폴로 계획은 개발 과정에서 계산기·트랜지스터·벨크로 등을 탄생시켰고 달 착륙 계획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며 “고래 언어를 해독하지 못해도 연구과정에서 기계학습, 동물 소통, 신비로운 동물들에 대한 인간 이해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하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공감 지평의 확대다. 1970년대 로저 페인 박사가 혹등고래의 소리를 녹음한 ‘혹등고래의 노래’ 음반은 화제를 부르며 세계적인 고래사냥 금지와 상업 포경 중단으로 이어졌다. 동물들이 자신과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가 듣게 된다면, 고기와 가죽의 주공급원으로 동물을 바라보던 관점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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