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법무부의 ‘인공지능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시민단체들은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수집된 시민 얼굴 정보를 인공지능 개발에 무단 활용한 사업의 추진 경위와 개인정보 침해 규모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참여연대·정보인권연구소·진보네트워크센터 등 4개 시민단체는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인공지능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이하 이 사업)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사업 주관 부처인 법무부는 2020년부터 출입국 절차 고도화를 명목으로 내·외국인 얼굴 데이터 1억7천만건 이상을 정보 주체 동의 없이 민간 업체에 이전해 왔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얼굴 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제3자 제공 요건이 까다로운 ‘민감정보’로 분류된다. 시민단체들은 “얼굴 정보는 개인의 유일무이한 정보이자 민감정보로서 법률로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이 사업은 정보인권을 대규모로 침해하고,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감사원에 “이 사업 추진 목적의 위법성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무부·과기정통부가 이 사업의 구실로 ‘국민 편의성·안전성’ 등을 내세운 것과 달리, 실무를 맡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보고서는 ‘국내 기업들이 데이터 확보에 겪는 어려움’ 등을 추진 배경으로 앞세웠다. 정부가 원격인식 기술 진흥 등을 위해 출입국 심사 목적의 얼굴 정보를 남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개인정보를 애초 수집 목적과 무관한 용도로 제3자에 무단 제공·위탁하는 것은 불법이다.
시민단체들은 감사원 감사로 이 사업의 정확한 ‘피해 규모’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 사업에 쓰인 얼굴 정보 수가 내국인 5700만여건·외국인 1억2천만여건 등인 것은 확인됐지만, 이 데이터의 ‘주체’가 몇 명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정보 주체가 이 사업으로 권리 침해를 당했는지 실태 확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감사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이어 이 사업 조사에 나서는 두 번째 공공기관이 된다. 앞서 개인정보위는 지난해말부터 시민 개인정보 침해 혐의로 법무부·과기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법무부와 과기부는 개인정보위의 조사가 시작된 후 알고리즘 학습 등 사업 진행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