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제2터미널 자동출입국심사대.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가 개인정보를 민간에 대규모로 넘기는 방식의 ‘인공지능(AI) 식별추적시스템’ 사업을 추진하며 내세운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비용 절감’이다. 개인정보를 돈 주고 구입하기엔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크니, ‘공짜’ 공공데이터를 줘 시스템을 개발하게 하자는 논리였다.
2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사업 전담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으로부터 받은 ‘2021년도 사업수행계획서’를 보면, 진흥원은 “인공지능 안면인식 알고리즘 개발에는 대규모 안면 데이터가 필요하나, 국내 기업은 개인정보 보호 등의 사유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이 이 기관은 “안면 사진을 학습용으로 확보하려면 개인으로부터 이용 동의를 받고 촬영해야 하며 1인당 2만∼1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안면 데이터 활용이 자유로운 중국 기업들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주관 안면인식테스트의 1∼5위를 석권했다”고 덧붙였다. 법적 제약으로 중국만큼 뛰어난 안면인식 인공지능 기술 육성이 어렵다는 얘기다.
해결사는 법무부가 맡았다. 법무부는 사업 시작 이전인 지난 2019년 3월 법무법인 지평에 법률 자문을 구했다. 공공 개인정보를 민간에 넘겨줄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지 물은 것이다. 지평은 맞춤형 답변을 내놨다. “참여 업체에 개인정보를 ‘처리위탁’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민간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으면 ‘본인 동의 없는 제3자 제공’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개인정보보호법 1차 해석 권한이 있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는 유권해석을 요청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명목상 위탁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권리관계 등 실질이 이와 다르면 ‘제3자 제공’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 바탕을 둔 시각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4월 개인정보 수탁자 권리를 다룬 사건(2016도13263)에서 “개인정보 처리를 위탁받은 수탁자는 위탁업무에 따른 대가 외에 개인정보 처리를 통한 독자적인 이익을 가지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실제 이번 식별시스템 사업은 민간 단순 위탁 사업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정황이 적지 않다. 개발자인 민간기업의 상업적 활용을 정부가 허용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법무부가 2019년 4월 내놓은 ‘공동 실행계획’은 “법무부 데이터를 활용해 개발·고도화된 시스템의 저작권에 대해 법무부 및 사업자가 공동 소유한다. 민간업체의 (저작권) 독자 행사도 가능하다”고 돼 있다.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소속 서채완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간 업체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전반에 접근하고, 그 산출물을 영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판례가 가리키는) ‘수탁자의 독자적 이익’에 해당한다. 형식적으로 위탁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위탁이 아니라면, 국내 판례들은 이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보고 처벌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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