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재난지원금 등 ‘정책’으로서 기본소득은 이미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기본소득당, 녹색당, 미래당, 여성의당 관계자들이 2021년 보편적 재난지원금 정례지급 예산 편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기본소득은 2016년 서울시 청년수당 및 성남시 청년배당 이후 정책으로서 본격 논의가 시작되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기본소득 논쟁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자’들은 4차 산업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부의 재분배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됐고,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기존 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보장 기능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또 기본소득을 통해 부의 재분배와 사회서비스의 균형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 복지체제 재편 및 확대를 주장하는 ‘복지국가론자’들은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과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본소득 도입에 회의적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재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대한민국 국민 5200만여명에게 매달 1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연간 6조2400억원, 30만원씩 지급한다면 187조2천억원이 필요하다. 올해 보건·복지·고용 부문에 편성된 정부 예산(약 200조원)에 맞먹는 규모다. 이런 이유로 복지국가론자들은 기본소득이 엄청난 예산 투입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고 비판한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지난겨울 한 포럼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급여가 높을 수 없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큰 실효성이 없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한국의 재정수지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아 지출에 여력이 있고, 현재 지출구조를 개선한다면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원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레 증세로 이어진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토지와
빅데이터 등 사회 전체에서 발생한 이익인 ‘공유부’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공동의 것이 되어야 할 수익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당”하자는 것이 기본소득 사상의 고갱이이다.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인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과거에 실물경제에서 이탈해 있는 금융자본에 거래세 및 자산보유세를 부과하는 방식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복지론자들은 방법과 시기의 구체성, 현실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순위도 중요한 이슈다. 지난해 기본소득이 정책의 하나로 논의되면서 전국민고용보험, 상병수당 등 다른 정책들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여러번 연출됐었다. 그러나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러한 논쟁 자체가 “기본소득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지난여름 한 토론회에서 백 교수는 “기본소득은 뺄셈과 나눗셈이 아니라 덧셈”이라며 사회보장제도와 기본소득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 교수)은 “사회정책으로서 기본소득과 대안담론으로서 기본소득을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이번 논쟁에서 서로 다른 범주와 깊이의 기본소득‘들’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기본소득이 어떤 생산 체제를 상정하고 있으며, 어떻게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낼 것인지” 등 기본소득이 가져올 새로운 체제와 변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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