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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아픈 손가락’ 중소기업 정책,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등록 2020-09-23 11:52수정 2020-09-23 11:54

[이재우의 산업혁신 톺아보기]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응원보드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응원보드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경제정책에 있어서 아픈 손가락을 꼽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중소기업 정책일 것이다 . 중소기업은 국내 기업 중 99%, 전체 고용의 83% 수준을 차지하는 경제의 핵심축이다 .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뿐만 아니라 소재 및 부품 산업의 중추로 산업 생태계의 기초인 동시에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항상 산업정책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 이에 따라 정부는 연간 약 22조원(총예산의 4.7%, 2019년 기준)의 정책자금을 공급하며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한국판 뉴딜’ 정책의 예산이 5년간 114조원(연간 20억원 내외), 4대강 예산 규모가 약 22조원인 것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자금이 매년 중소기업 육성에 투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간 중소기업 지원체계의 차이로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부보증을 통한 금융기관의 중소기업대출 규모가 GDP의 약 4%(2016년 기준)로 OECD 회원국 평균인 0.1%에 비교해 매우 높다는 것을 볼 때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규모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는 않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은 참혹하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연간 증가율은 199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2014년 이후에는 1% 이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기업과의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어 대기업 생산성의 32%(2015년 기준)로 하락하여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생산성의 부진은 수출 부진으로 이어져 중소기업(고용인 249명 이하) 중 수출하는 기업 비중이 2% 미만(제조업체 기준으로 8% 미만)으로 우리나라보다 수출규모가 적은 영국(전체 7.1%, 제조업 23.6%), 스페인(전체 8.1%, 제조업 21.4%)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 수준으로 유럽 주요국(30% 이상)보다 낮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생산성 하락을 넘어서 한계기업 또는 좀비기업으로 전락하여 산업 활력소가 아니라 짐으로 작용하며 생태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2019년 기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의 비중(자산총액 500억 이상인 외감대상 기업 기준)은 약 15%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며, 이 중 중소기업 비중은 85%를 상회하고 있다. 중소 한계기업의 수는 2015년 1950개에서 2019년에는 약 2600개로 늘어 연평균 7%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계기업의 증가는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이 생존하여 산업의 건전한 구조조정 과정을 지연시키며 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경제 전반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울면 젖 주는 식의 정책은 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킨다

지속적인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 경제의 짐으로, 예산의 블랙홀로 전락한 것인가? 그 원인의 하나는 과보호에 따른 자생력의 약화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정책 포탈을 찾아가보자.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분야는 어느 나라보다 치밀하다. 창업부터 수출단계까지, 기술, 인력, 금융, 마케팅, 경영 컨설팅 등 전 분야에 걸쳐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정책차림표’라고 할 정도이다. 지원 사업수 역시 2015년 1250여개의 수준에서 야금야금 증가하여 2019년에는 1650개를 상회하고 있다. 중앙 부처가 모두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지방자치제가 확대되며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기업마당’ 누리집(http://www.bizinfo.go.kr/see/seea/selectSEEA121View.do)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기업마당’ 누리집(http://www.bizinfo.go.kr/see/seea/selectSEEA121View.do)

겉으로 이렇게 화려한 메뉴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모든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프로그램의 실행과정을 들여다보자. 지원의 첫 단계인 지원대상의 선별에서부터 문제는 발생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더 상황이 안 좋은 기업일수록 선택될 가능성이 높게 설계되어 있다. 결국 기업의 미래 성장가능성이 선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결국 지원기업의 성장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둘째, 기업당 지원금액의 규모이다. 전체 지원규모는 크게 보이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이 작동하다 보니 프로그램당 지원액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지원 실적을 지원 기업수로 평가하다보니 기업당 지원액수는 더욱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원 금액이 작다보니 정책적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원성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원받는 기업에게 정확한 성과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의 성과 여부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책당국자의 목적이 정책실행 건수에 있지 그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성장가능성이 높지 않은 기업을 대상으로 정확한 성장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정책이 중소기업 성장의 성과를 낸다면 아마 더 이상한 일이 것이다.

이렇게 성과보다는 지원실적 자체가 목적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기업의 경제적 위상과 시장경제의 약자적 입장 때문에 어느 누구도 지원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앙정부 및 지자체는 정책실행에 큰 저항이 없는 중소기업 정책의 개발을 독려하는 것이다. 정치권 역시 득표 전략으로 중소기업의 이해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 국정감사 시 부처나 공공기관은 중소기업 지원에 따른 부실을 지적받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규모 확대를 요구받게 된다. 그러니 ‘울면 젖 주기’식의 중소기업 정책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끼워팔기식 정책은 기업을 딜레마에 빠트린다

또 하나의 문제는 끼워팔기식 정책 실행이다. 정부는 항상 일석이조식 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것이 정책 비용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정책도 많은 경우 고용창출 기업에 대하여 지원 인센티브를 주어 기업성장과 고용문제를 같이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정책의 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업은 지원대상으로 선별되기 위해 고용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문제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노동 생산성 개선이 필요한데 이는 지원의 조건인 고용을 축소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원을 계속 받을 것인가? 생산성을 개선할 것인가? 선택의 지점에 서게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생산성 개선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성이 있는 반면 현재 상황에서 고용유지를 통한 정부지원은 확실한 상황이므로 기업이 생산성을 개선할 유인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계 중소기업의 고용현황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이후 한계 중소기업의 기업당 고용인원수의 변화는 1~2명 수준으로 매우 안정화되어 있다. 경영상황이 안 좋아지면 고용인원이 축소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계기업에서 이렇게 고용인원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고용유지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왜 중소기업 정책에 고용 조건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다”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정책 당국에게 당연한 명제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명제에 따라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복지의 문제가 고용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리고 고용이 경제정책의 가장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철학이 중소기업 정책에 있어서도 고용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의 고용으로의 치환은 복지 확대를 위한 정부의 개입을 축소시키고 고용의 주체로서의 기업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기업중심적 사고를 확대시켜 ‘기업불사’의 상황을 만들고 시장 비효율을 낳고 있는 것이다.

■ 원칙으로 돌아가자

중소기업 정책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원칙으로의 회귀이다. 그 원칙은 매우 단순하다. 1) 정책의 목적은 기업 성장에 있다. 2)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원대상의 선별 기준은 성장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 3) 지원에 대한 대가(기업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4) 마지막으로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기본법 제1조를 보자 “이 법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과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시책의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여 창의적이고 자주적인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나아가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고 국민경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이 목적만을 가지고 정책을 설계하고 이 목적을 실행할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하고 그들에게 성장 목표를 제시하여야만 중소기업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입장에서 어떤 명목으로 지원을 받던 그들에게는 차이가 없으므로 지원 프로그램을 과감히 축소하여야 한다.

아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끊는 지혜일 것이다.

이재우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산업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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