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헤리리뷰

독일 제조업의 힘 ‘히든 챔피언’, 속 꽉찬 직업훈련제도가 ‘보약’

등록 2020-06-19 11:54수정 2020-06-19 17:15

‘혁신과 포용’ 현장을 가다 독일

고품질 교육이 고숙련 기술자 양성
노동자에겐 고임금 기회 높이고
기업은 산업경쟁력 강화 ‘선순환’

4차산업혁명 대응 ‘인더스트리 4.0’
노동자에 디지털 친화 재교육 강조

코로나 해법도 사회적 대화로 접근
노사 위기협약으로 해고최소화 노력
독일은 높은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히든 챔피언’(작지만 강한 기업)의 나라다. ‘히든 챔피언’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꾸준히 창출하고 있다. ‘히든 챔피언’의 활약은 독일이 세계 4~5위 경제 대국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며 전 세계적 불황에서도 지속적인 성장과 3% 이하의 낮은 실업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히든 챔피언’의 성공비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독일의 직업훈련제도의 내부는 어떨까.

독일이 최근 또 다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industrie 4.0)으로 불리는 새로운 산업정책은 전통적 제조업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독일의 산업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필자는 독일이 혁신경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직업교육훈련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한스뵈클러 재단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BiBB) 등을 방문하였다.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BiBB) 전경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BiBB) 전경

■ 독일 직업교육훈련제도의 특징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BiBB) 미샤일 티만 박사는 직업훈련제도의 가장 큰 강점으로 교육훈련이 취업으로 원활하게 연계된다는 점을 들었다. 독일의 직업훈련은 학교와 기업의 산업현장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원적 훈련제도를 통해 취업을 원하는 훈련생들은 학교에서 이론적 토대를 배우고 기업에서는 산업현장의 실제 업무에 투입되면서 실습 위주의 훈련을 받는다. 직업훈련제도의 주체는 정부(연방정부와 주정부), 기업, 노동조합이지만, 정부는 직업훈련제도를 감시·관리하는 행정적 역할만 담당하며 훈련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와 이들을 현장에서 훈련시키는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직업훈련의 대부분이 기업의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지며, 훈련생은 기업의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기 때문에 직업훈련의 내용은 기업의 요구가 많이 반영된다.

독일 직업훈련제도의 또 다른 강점은 이 제도를 통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고숙련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직업훈련제도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고 훈련생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직업훈련제도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고 높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인적 자원을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노동자들에게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높이고 기업은 고숙련 노동자들을 활용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독일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직업훈련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수많은 ‘히든챔피언’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의 직업훈련제도는 노동자와 기업에게 모두 윈-윈이 되는 제도이다. 기업은 직업훈련생에게 낮은 보수를 지급하며 기술과 업무를 가르치고 숙련된 노동자들을 채용할 수 있다. 이는 기업에게 고용의 모집 비용을 줄이고 안정적인 인력수급을 가능하게 한다. 구직자는 높은 품질의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고 본인이 배운 기술과 희망하는 일자리를 일치시킬 수 있다.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청년실업률이 매우 낮은 국가이다. OECD 평균과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10% 수준인 반면 독일은 6% 정도이다. 독일은 대졸자 비율이 낮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이 낮은 이유가 바로 이런 직업훈련제도 때문이다.

■ 4차 산업혁명과 독일의 대응

한스뵈클러 재단의 스테판 루킹 박사
한스뵈클러 재단의 스테판 루킹 박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변화에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광범위한 로드맵을 준비했다. 한스뵈클러 재단의 스테판 루킹 박사는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에서 디지털 기반의 IT산업으로 독일의 산업구조를 전환하려는 계획이라기보다 독일이 가진 제조업 경쟁력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즉 독일은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변함없이 제공하고 이들의 숙련 기술을 디지털 친화적으로 재교육하여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방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더스트리 4.0’은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로드맵을 수정해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력은 쉽게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경제구조의 변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교육, 복지 등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다. 현재 독일은 ‘인더스트리 4.0’뿐만 아니라 ‘노동 4.0’, ‘교육 4.0’, ‘복지국가 4.0’ 등과 같은 전사회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IG Metall(금속노조)은 클라우드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인 ‘Fair Crowd Work’를 조직하고 클라우드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향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에서는 디지털 사회보험(Digital Social Security) 등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스테판 루킹 박사에게 노동, 복지, 교육 중 독일이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디지털 산업화에 대응하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독일의 직업교육훈련제도라고 대답했다. 독일 정부와 기업은 혁신 경제의 성공은 노동자의 역량에 달려있음을 일찍이 인식하고 직업교육훈련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 독일은 직업훈련으로 어떻게 혁신을 준비하고 있는가?

산업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일자리 구조가 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독일 연방노동청 산하 노동시장·직업조사연구소(IAB)에 따르면 산업의 디지털화와 인공지능 활용으로 모든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의 모든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2035년까지 1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연구소는 살아남은 일자리 또한 업무의 복잡성이 점점 증가하여 기존의 업무 역량으로는 그 일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디지털 산업화가 미래의 일자리 전망에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디지털 산업화는 기존에 없던 일자리와 새로운 고용 기회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산업화의 변화에 새롭게 요구되는 직무역량을 습득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거나 기존의 일자리에서 쫒겨나는 등 새롭게 재편된 고용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지털 산업화에 맞춘 직업훈련의 진화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직업훈련의 진화는 기술이 급격히 발달해도 실업의 우려를 줄일 수 있고 새로운 직종이 생겨나도 취업의 기회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의 미샤일 티만 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화성과 융합적 사고 능력을 꼽았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생산 기술의 활용은 시장의 변화에 맞춰 제품의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거나 시장의 요구에 따라 신제품의 신속한 출시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 과정을 모두 통제할 수 없다. 인간이 이 과정을 통제해야 하며 인간의 업무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인간에게 디지털 생산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작동할 수 있는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개발, 생산, 관리, 마케팅까지 많은 공정이 통합되면서 그 과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융합적 사고 또한 요구하고 있다. 미샤일 티만 박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독일의 직업훈련제도가 크게 변화된 것은 없지만 지난 10년간 기술의 변화에 대응하여 학교와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학교의 교육 설비나 기기에 스마트 보드 등 디지털화된 도구를 활용하여 디지털 친화성을 높여주거나 직업훈련학교에서도 디지털 공간과 도구를 활용한 훈련 프로그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 한국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중요한 국정 목표 중 하나로 ‘혁신적 포용국가’를 제시했다. 혁신으로 성장을 이루고 포용을 통해 국민 모두가 성장의 혜택을 누리자는 것이 ‘혁신적 포용국가’의 핵심이다. ‘혁신’과 ‘포용’은 어찌보면 상반되는 개념으로 여겨지고 공존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혁신으로 성장을 하고 포용으로 그 혜택을 나누기만 한다면 성장과 포용은 함께 지속할 수 없다. 성장과 포용이 선순환하려면 포용이 단순히 혜택을 나누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장의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내가 독일에서 찾은 포용의 성장 동력은 독일의 직업훈련교육제도가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발전된 개인의 역량이 지속적인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은 기술의 변화에 맞는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 후에도 평생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술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이는 청년과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는 기술의 발전에 조응하는 노동력을 제공하여 혁신경제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세금으로 직업교육을 시키고 수료증을 쥐어 주고 보내는 방식의 직업교육은 의미가 없다. 청년이 원하고 취직할 수 있는 기술을 교육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적 자원을 키워내는 것이 혁신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포용의 방법이다.

독일 현지에서 전문가들과 인터뷰 말미에 한국이 혁신성장과 포용국가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제안을 부탁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기술의 혁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술혁신에 대비한 사회적 대응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산업구조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복지, 교육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온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국가로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전략이 부재하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과 혁신적 포용국가는 정부의 주도로 의제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스뵈클러재단의 스페판 루킹 박사는 독일이 혁신경제에 선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로 사회적 관심과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대응을 꼽았다. 또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노사정 합의로 만들어진 로드맵임을 강조했다. 우리도 변화하는 혁신경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독일의 직업교육제도가 기술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도 훈련을 받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훈련시키는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한스뵈클러 재단 전경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한스뵈클러 재단 전경

■ 코로나19에서 다시 빛나는 독일의 사회적 대응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독일의 사회적 대응은 최근 코로나19 위기에서도 다시 한번 빛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에서 생산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세계적 경제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실업률은 올해 4월 5%에서 5.8%로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교하면 독일의 실업률 증가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독일은 코로나19의 위기상황을 정부·노동계·기업의 사회적 대화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 IG Metall(금속노조)은 올해 3월 기업과 위기협약을 체결했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해고를 최소화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임금협약으로 노조는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대신 기업의 고용보장을 약속받았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의 협약에 임금 손실을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화답했다. 독일의 쿠어츠아르바이트(Kurzarbeit: 조업단축)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단축 근무를 통보했을 때 급여 삭감분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로 근로자는 단축 근무에서도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기업은 숙련된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에 적은 비용으로 인적자원을 유지할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이 제도의 혜택 요건과 대상을 대폭 완화했다. 독일은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노동자와 기업이 주체적으로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정부가 이를 돕고 있다. 한국이 독일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위기에서 정부의 지원만 바라기보다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의 대응이 무엇일지 독일의 사례를 통해 고민이 필요하다.

글·사진 남윤민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 전임연구원 yunmin.nam@gmail.com

[관련기사]
▶ ‘강소국’ 핀란드 경쟁력의 원천은 혁신과 복지, 배움의 선순환
▶ ‘러스트벨트’ 피츠버그는 어떻게 ‘신경제’의 중심이 되었나?
▶ 불안정노동의 늪에 빠진 영국…리키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국민 74.8% “윤석열 즉시 하야·탄핵해야” [리얼미터] 1.

국민 74.8% “윤석열 즉시 하야·탄핵해야” [리얼미터]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담화에…주가·원화가치 상승분 반납 2.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담화에…주가·원화가치 상승분 반납

오픈AI, 월 28만원 ‘챗GPT 프로’ 출시…수익성 확보 속도내 3.

오픈AI, 월 28만원 ‘챗GPT 프로’ 출시…수익성 확보 속도내

명품 아울렛까지 들어간 다이소…경쟁력은 어디서? 4.

명품 아울렛까지 들어간 다이소…경쟁력은 어디서?

‘GTX-A’ 운정중앙~서울역 28일 개통…파주~서울 22분 만에 5.

‘GTX-A’ 운정중앙~서울역 28일 개통…파주~서울 22분 만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