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앞줄 가운데)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0 대한민국 미래전망 대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문뜩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답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편차가 있을 뿐 아니라 주관적인 만족의 정도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삶의 행복도를 점수로 매길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0 삶의 질’(How’s Life? 2020) 보고서는 각국 국민의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영역별 지표를 통해 잘 보여준다.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이번에도 오이시디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국민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의 등장은 성장과 행복의 불일치, 그 괴리 앞에 싹튼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엔은 산하 자문기구를 통해 2012년부터 해마다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 정부 차원에서 ‘국민 삶의 질 지표’ 개발에 들어가 2014년 구축한 누리집 ‘e-나라지표’(index.go.kr)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쓴 이후 무분별한 성장주의를 돌아보면서 나온 반작용인 셈이다.
■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성경륭) 주최로 ‘명견만리: 빅데이터에서 대한민국의 갈 길을 찾다’ 주제의 ‘2020 대한민국 미래전망 대회’가 열렸다. 경인사연 소속 26개 국책연구기관 등이 참여해 외교·안보·보건·경제·고용·복지 등을 놓고 주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이 가운데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국민 삶의 질 지표’를 통해 최근 10년간 연구기관들이 축적한 각종 데이터에 기반해 시민 삶의 추이를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추상적이고 다차원적인 삶의 질을 측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통계개발원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정도를 분석하기 위해 가족·공동체, 건강, 교육, 고용·임금, 소득·소비·자산, 환경, 주관적 웰빙 등 11개 영역으로 나눴고 여기에 근로시간·고용률·삶의 만족도 등 71개 지표를 사용했다. 최바울 통계개발원 실장은 “지난 3월 기준으로 전기 대비 개선 지표는 45개, 악화 지표는 21개, 동일한 수준을 보인 지표는 5개였다”며 “최근 10년간 추이를 보면 전반적으로 양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으나, 질적인 부문과 주관적 지표에서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지표별로 보면, 고용률과 가구중위소득, 고등교육 이수율,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아동 안전사고 사망률 등은 대부분 오이시디 평균치를 넘었다. 그러나 상대빈곤율과 근로시간, 자살률, 삶의 만족도, 도로교통사고 사망률 등은 오이시디 평균에 못 미쳤다.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만족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삶의 만족도는 2013년(5.7점) 이후 증가 추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만족도(6.0점)는 전년(6.1점)에 비해 약간 줄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조금 더 높게 나왔으며, 연령대별로는 60대(5.8점)가 가장 낮았다. 오이시디 주요국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2017~2019년 평균 5.87점으로 같은 기간 오이시디 평균(6.71점)보다 0.8점 정도 낮게 나왔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했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쓰고 있는 근로시간은 점차 개선되고는 있으나 오이시디 주요국에는 한참 못 미쳤다. 2018년 한국의 근로시간은 1967시간으로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1400시간 미만에 비해 월등히 길다. 한국 다음으로 긴 미국의 근로시간도 1792시간에 그쳤다.
악화 추이를 보이는 지표도 적지 않다. 특히 가계부채 비율과 비만율, 독거노인 비율, 대기질 만족도 등은 해가 갈수록 더 나빠지는 추세를 보였다. 가구의 소득 대비 부채 정도를 나타내는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147.5%에서 2018년 184.2%로 지난 9년간 계속 높아졌다. 이는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에서 부채 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지출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미국(105.4%), 일본(107.0%), 프랑스(120.7%), 영국(141.2%) 등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았다. 생활 환경에서의 주관적 웰빙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인 대기질 만족도는 계속 낮아졌고, 만 65살 이상 노인인구 중 혼자 거주하는 노인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 지디피와 성장 지상주의를 넘어
‘고용과 불균등’을 주제로 발표한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은 원인을 노동 측면에서 찾았다. 그는 “장시간 근로와 성별 고용률 격차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성별 고용률 격차는 2000년 23%포인트에서 2018년 19%포인트로 좁혀지긴 했으나 멕시코와 터키를 제외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노동 측면에서 국민행복도를 높이려면 고용률을 높이고 열악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일-생활 균형(워라밸) 정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더 깊어질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노동시장 충격은 컸다. 취업자는 급감하고, 구직을 포기하거나 일할 능력이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는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의 긴급 처방에도 취약계층에선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월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상황이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용시장의 양극화 확대에 대응해 ‘한국형 뉴딜’과 같은 단기적 고용 확대 정책에 사회보험체계 구축 등 노동시장 틀을 개혁하는 장기 과제를 병행할 것을 제안했다.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다 유연한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함께 상시적·보편적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포용국가의 비전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척도는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웰빙(행복)이어야 한다.” 지난해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가 한 말이다.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경제·환경·사회적 요소를 포함해 총 39개 항목으로 구성된 웰빙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근거로 올해 예산안을 짜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 지표로 평가받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들어섰지만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일깨운다.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부담과 낮은 고용률, 삶의 만족도, 과도한 가계부채…. 성장과 지디피를 넘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지표들이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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