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린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회의실에서 2018년 최저임금에 대한 표결 내용이 칠판에 적혀있다. 이날 확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이다. 세종/연합뉴스
2018년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월급 157만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이 한 자리 수 인상에 머물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대폭 올랐다. 무엇이 달라질까.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은 자명하다. 한편에선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주의 고충이 가중될 위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을들간의 적대인가, 상생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형국이다. 이럴 때일수록 근본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한 촛불시민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지 않았다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불가능했다. 16.4% 인상률은 촛불 민의가 반영된 결과다. 식민과 분단, 전쟁과 독재의 기나긴 터널을 지난 한국 사회가 21세기 초입에 마주친 암초가 양극화다.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이룬 역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심화는 그 모든 성과를 상쇄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1천만명을 훌쩍 넘긴 비정규직 규모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고착화된 차별 구조는 한국사회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청년들이 전근대 신분사회에 빗대 ‘헬조선’이라고 절규했다. 기아선 상에 놓인 어르신들의 수심과 한탄이 켜켜이 쌓여갔다. 대한민국은 불안하고 불행한 나라로 곤두박질쳤다. 연인원 1700여만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에서 염원한 건 비정상의 정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글을 공동체로 바꿔야 할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첫 번째 시험대였다. 노동조합 바깥으로 배제된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최저임금만큼 중요한 노동 의제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도 공약했으므로 국민과의 약속 이행도 중요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최저임금은 기대치만큼 올라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이제 중요한 건 후속 대책이다.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를 요구하며 지난달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과 이들에 연대하는 정규직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본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을 받는 쪽이나 오른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쪽이나 더 큰 ‘슈퍼갑’인 대기업 집단에 의해 수탈당하는 처지에 있다. 부당한 착취와 수탈은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인 대한민국에서 추방되어야 할 단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 정상화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절대 다수인 을들끼리 적대한다면 한국 사회는 공멸이 불가피하다. 결국 상생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600여만 영세자영업자 중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 영향받는 이들은 노동자를 고용한 자영업자들로 170여만명 수준이다. 대부분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등 프랜차이즈 업태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 영세자영업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고율의 가맹수수료와 부대비용, 카드수수료와 임대료 등이다. 합당한 수준으로 수수료 및 임대료를 인하하고 부당한 갑질로 뺏기는 비용만 해소해도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지역상권의 대다수 영세자영업자들을 일거에 절단내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도 막아야 한다.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면 된다.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 원청의 부당한 수탈만 극복해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무겁지 않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혁파와 골목상권 보호, 다양한 영세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면 수구보수 언론이 과장해 아우성치는 알바 대량해고와 중소기업 폐업 사태는 일어날 수 없다. 도리어 중장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선순환으로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도 사는 길이 된다. 무엇보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저소득 서민 중심 경제구조로 바꾸면 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우리 사회 최대 을들인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상생하는 길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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