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리뷰] Special Report
싱가포르의 지속가능발전 도시정책
싱가포르의 지속가능발전 도시정책
싱가포르는 글로벌 도시 중 인구밀도가 높은 메가시티 중 하나다. 전체 면적은 718㎢로 546만명이 거주하고 있다.(서울 605㎢, 1010만명)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삶의 질은 낮아지기 마련이지만, 싱가포르는 매년 글로벌 도시들의 삶의 질 평가에서 아시아 도시들 중 최상위 순위에 오른다. “싱가포르는 좁은 땅과 한정된 자원을 가진 작은 나라예요. 개발도상국들이 선호하는 ‘선 개발 후 환경’의 접근법은 장기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린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함께 추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만 했어요.”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히리민 살기좋은도시연구센터(CLC·Centre for Liveable Cities)부소장은 싱가포르의 지속가능발전 정책 목표를 △경쟁력 있는 경제 △지속가능한 환경 △삶의 질 향상 등 세 가지 목표의 균형적 발전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는 국토개발부 도시재개발국 산하기관이다. 싱가포르의 지속가능발전 도시 정책을 수립·운영하는 핵심 기관은 도시재개발국(URA)과 정부기관 간 위원회다.
싱가포르 도시 계획은 ‘콘셉트플랜’과 ‘마스터플랜’ 두 축으로 구성된다. 콘셉트플랜은 도시 계획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향후 40~50년 뒤를 위한 비전을 설정하고 전체 싱가포르 국토에 대한 장기적 전략 및 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여기에는 △싱가포르가 추구해야 할 비전 △정부 부처 간 협조 사항 △대규모 개발사업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이 포함된다. 반면 마스터플랜은 5년마다 수립되며, 콘셉트플랜의 기조하에 세부적인 도시 개발 계획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정부기관간 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콘셉트플랜에서 마스터플랜까지, 모든 계획 과정에 도시재개발국이 참여한다. 도시재개발국에는 약 1000여명에 이르는 도시 계획·설계 전문가들이 있다. 도시 설계의 의도와 내용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민간 기업 및 개발 전문가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조언하는 구실도 맡고 있다.
도시재개발국이 싱가포르 도시 정책의 싱크탱크라면, 정부기관 간 위원회는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다. 국토개발부·국토교통부·사회가정개발부 등 주요 정부 부처 수장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정책 수립 초기부터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각 부처가 담당하는 세부 정책, 예를 들어 교통 인프라 건설, 교육 및 문화 정책들과 도시 계획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도시 정책에 반영하고, 실행 부처 및 예산 배분과 같은 부처 간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기관뿐 아니라 시민들도 도시계획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5년마다 실행 성과를 평가하는 마스터플랜의 경우, 정부는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이 수정안을 제시하거나 반대 의견을 등록할 수 있는 의사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984년에 만들어진 ‘피드백 유닛’이 대표적이다. 마스터플랜의 구체적 정책안을 포함해 콘셉트플랜에 담는 도시 비전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2006년부터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으로 접근할 수 있는 ‘리치’(REACH) 프로그램으로 대체해 운영중이다. 이밖에도 시민협의위원회와 공공주택 거주자를 중심으로 한 거주자위원회 같은 풀뿌리 사회조직들, 학계와 민간, 기업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포커스그룹 회의, 도시계획 관련 포럼 및 전시회 등 다양한 대화 창구도 운영한다.
시민 반대로 첵자와 지역 개발 포기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모인 시민사회의 의견은 실제 도시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첵자와 부지 개발 계획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1년 첵자와 지역의 개발 계획을 발표했는데, 녹지 훼손을 우려한 환경단체와 주민단체가 강하게 반대했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발 용도를 공장 및 사업 부지에서 생태공원으로 변경했고, 현재 첵자와 지역은 생태체험 장소로 싱가포르 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즐겨 찾는 명소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국토의 절반을 공원으로 조성해 ‘가든 시티’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결산 보고서에 지속가능 지표 게재
싱가포르 지속가능발전 도시 정책의 또다른 성공 요인은 성과와 연계된 정책 평가 시스템이다. 도시재개발국 산하 살기좋은도시연구센터는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기반으로 21개의 지속가능발전 지표를 개발했다. 나아가 지속가능발전 지표를 각 담당 부처의 성과 평가 지표에 연계해 매년 보고하도록 했다.
재무부는 2011년부터 모든 정부 부처별 세입·세출 보고서에 지속가능발전 지표에 따른 성과를 함께 싣고 있다. 이 예산 보고서는 재무부에 소속된 공공 도메인을 통해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히리민 부소장은 “예산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과 관련해 특정 영역 및 부처에 예산과 지출이 어떻게 집중되는지를 보여준다”며 “지속가능발전 성과 목표들이 균형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인 동시에 시민들이 정부 부처의 노력과 의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싱가포르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싱가포르는 1960년대 4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을 한 세대 만에 5만달러로 끌어올리며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 문제는 지속가능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지난해 기준 0.47로 선진국 그룹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 중앙연금준비기금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빈곤선 이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6%로 미국보다도 높다.
최근에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둔 경제 정책 기조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2월 싱가포르 정부는 상위 5% 고소득층 과세율을 20%에서 22%로 올렸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과실을 좀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는 정책 전환의 성과가 주목된다.
싱가포르/박은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kpark@hani.co.kr
동작감지센서로 독거노인들 상태 실시간 파악 싱가포르의 ‘샤인시니어’ 프로젝트 # 82살 노인이 가족들에 의해 싱가포르 북쪽의 조호르바루에 버려졌다. 비싼 치료비와 간병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가족들이 아버지를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싱가포르 더뉴페이퍼> 2013년 6월27일치) # 싱가포르 공공주택에 사는 60대 독신 여성이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로 소방대원에게 발견된 그는 평소 왕래하는 자식이나 친척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파이낸셜뉴스> 2007년 5월15일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도 혼자 사는 노인들의 ‘독거사’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2011년 싱가포르 사회가정개발부의 자료에 따르면, 55살 이상 인구 중 47%가 혼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는 인구의 80% 이상이 정부가 제공하는 주택(HDB)에 살 정도로 공공주택제도가 잘 발달돼 있다. 정부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경우 나이와 소득에 따라 시가보다 싸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리엔사회혁신센터 재러드 탐 수석연구원은 “최근 공공주택 구입 대상 기준이 35살 이상 미혼자 또는 월소득 5000달러까지로 확대됨에 따라, 독거노인을 포함한 1인가구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독거노인들의 증가에 따라 의료·간병 서비스에 대한 조치가 시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5시간 움직임 없으면 돌보미 연락
싱가포르 경영대학교의 아이시티랩(iCity Lab)은 노년층에 대한 의료·간병 서비스 해법을 정보기술에서 찾고자 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국토개발부(MND)와 국가연구기금(NRF)의 연구지원 사업으로 시작된 ‘샤인시니어’(SHINE Seniors) 프로젝트는 동작감지센서를 통해 이용자들의 생활 패턴에 맞춘 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생활 침해에 예민한 싱가포르 노인들의 특성에 맞춰, 적외선으로 개별 움직임을 감지해 5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을 때 돌보미들에게 자동으로 연락이 가는 센서를 개발해 적용한 것이다. 샤인시니어(Smart Homes and Intelligent Neighbours to Enable Seniors)는 ‘스마트홈’과 ‘노년층을 위한 현명한 이웃’의 줄임말이다.
“프로젝트 초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노인분들이 케어 시스템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 내에 카메라가 있다고 믿거나, 센서 설치로 전기세가 더 부과될 것으로 알고 거절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휘핑크 탄 교수는 시범 가정에 센서를 설치할 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초기 아이시티랩의 가장 큰 과제는 정보기술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상 노인들과 정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2명의 커뮤니티 코디네이터를 뒀다. 이들은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개발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한편, 케어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했다. 노인들과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개별 노인들의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노인들의 동선 패턴을 예측하는 센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수면 습관, 이웃 및 가족들과의 사회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샤인시니어 프로젝트 성공의 관건은 이용자인 노인들뿐 아니라 케어 시스템에 대응하는 자원봉사자다. 아이시티랩은 케어 시스템이 지속가능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업무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노인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복지기관(VWO)과 파트너십을 맺고, 한 대의 케어 시스템에 필요한 적정 인원은 몇 명인지, 병원과의 이동성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의 문제를 함께 고민했다.
아이시티랩은 실제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주택 관리를 담당하는 주택개발청은 샤인시니어 프로젝트의 시범 대상자를 추천하고 케어 시스템 설치를 지원한다. 케어 시스템이 발견한 건강 이상 노인들을 병원에 이송해 의료 조처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 병원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연구소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노인들의 의료 조처를 담당할 싱가포르 동부 병원 협회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다.
2017년까지 100개 가정에 설치
아이시티랩은 현재 30개 가정에 케어 시스템을 설치했다. 2017년까지 100곳에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노인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응하는 수동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미리 질병을 예방하는 능동적인 시스템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탄 교수는 “향후 의사들이 노인들의 개별 행동 습관을 파악해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스마트 케어 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박은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지난해 싱가포르 살기좋은도시연구센터와 도시토지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시민사회 도시계획 워크숍에서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건설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있다. 싱가포르 살기좋은도시연구센터 제공
동작감지센서로 독거노인들 상태 실시간 파악 싱가포르의 ‘샤인시니어’ 프로젝트 # 82살 노인이 가족들에 의해 싱가포르 북쪽의 조호르바루에 버려졌다. 비싼 치료비와 간병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가족들이 아버지를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싱가포르 더뉴페이퍼> 2013년 6월27일치) # 싱가포르 공공주택에 사는 60대 독신 여성이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로 소방대원에게 발견된 그는 평소 왕래하는 자식이나 친척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파이낸셜뉴스> 2007년 5월15일치)
싱가포르 피스헤이븐 양로원의 한 사회복지사가 노인을 살펴보고 있다. 싱가포르 구세군 누리집 제공
샤인시니어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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