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보퍼트 해역에서 유전 탐사 작업 중인 셸의 시추선 쿨럭호의 모습. 영국 ‘가디언’ 제공
[헤리리뷰] ‘투자금 회수’ 압박 받는 화석연료 기업들
“우리의 목적은 화석연료 기업들의 도덕적 파산이지, 그들을 재정적으로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탄소기업’에 대한 투자 회수를 요구하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은 화석연료 투자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50여개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수했다.
이어 40조원가량을 운용하는 스웨덴 국가연금펀드(AP)도 10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탄소기업에서 회수해 다른 산업에 투자하자는 취지의 ‘탈탄소 포트폴리오 연합’을 선언했다. 각국 공적 연기금들이 앞다퉈 탄소기업 투자 회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 매장량의 65~70%는 ‘좌초자산’
이런 국제적 흐름의 시발점은 경제 분석가들이 설립한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탄소추적자 이니셔티브’(CTI·Carbon Tracker Initiative)가 ‘좌초자산’ 개념을 제시하면서부터다. 좌초자산(Stranded Asset)은 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된 자산을 의미한다. 시티아이는 2011년 보고서를 통해 현재 확인된 세계 석유 매장량의 65~70%는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현재 석탄·석유기업이 보유한 매장량은 이산화탄소톤(CO₂t)기준으로 2795기가톤(Gt)으로 추산된다. 국제사회는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섭씨 2도 이상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기준으로 2050년까지 태울 수 있는 화석연료의 양, 즉 ‘탄소 예산’은 900~1075기가톤가량이다. 이는 현재 화석연료 매장량의 30~35%에 해당하는 양으로 나머지 65~70%는 시장 가치가 없는 좌초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글로벌 투자 전문기관들은 향후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규제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존 에너지 구조의 전환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앞으로 좌초자산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시장 환경도 화석연료 기업들에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최근 셰일가스와 신재생에너지의 생산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화석연료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씨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대형 투자은행과 캐나다의 퀘벡주의 연기금들은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을 앞다퉈 늘리고 있다. 아직까지 재생에너지 투자 수익률은 높지 않지만, 석유나 천연가스와 달리 기후변화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석유메이저 토탈, 태양광업체 인수
하지만 화석연료 기업들은 이에 아랑곳않고 여전히 새로운 매장량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2014년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유럽의 석유 메이저들은 해마다 새로운 유전 탐사·개발에 411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최근 국제적 흐름과는 정반대의 자본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태양광업체 인수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한 토탈의 사례를 들어, 화석연료 기업들이 저탄소 에너지 시대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 중 하나인 프랑스 토탈은 2011년 미국의 메이저 태양광업체 선파워를 인수해 재생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토탈은 현재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 2위 업체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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