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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약자 연대’ 깃발 들고 사회 그늘진 곳 보듬는다

등록 2013-06-24 16:43수정 2013-06-24 17:00

엘지전자 노동조합은 최근 ‘글로벌 환경자원봉사의 날’을 제정하여 국내 전 사업장 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엘지전자 노동조합 제공
엘지전자 노동조합은 최근 ‘글로벌 환경자원봉사의 날’을 제정하여 국내 전 사업장 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엘지전자 노동조합 제공
새롭게 주목받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면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Union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조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했다. 유에스아르란 조합원뿐 아니라 비정규직, 협력업체 노동자, 소비자,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노조 활동에 포함시켜 투명한 조직 운영, 윤리적 행동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노동운동의 본래적 속성인 약자의 연대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듬는 사회공헌 활동을 포함한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제는 노조가 비정규직, 지역사회 등 외부로 시선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다. 임금이나 고용조건 등 전통적인 활동 영역을 넘어 참여와 개입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체제로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지전자 노조, 선구자적 역할 해 와
실례로 일본 최대 노총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노동운동의 사회성을 강조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노동센터를 설립했으며, 산별연맹으로 유에스아르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금속노협은 기업의 사회책임활동에 노조의 적극적인 참여와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제에 관심을 갖고 도입한 엘지전자 노조의 경우 소비자를 위한 생산 및 품질 강화, 국내외 공동환경운동 전개, 사회적기업 생산성 향상 컨설팅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노조 건강성 제고와 재활성화 계기
유에스아르 활동은 노조의 이해관계자 속에 비정규직, 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시킴으로써 노동계층 내 양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약자의 연대라는 노동운동 본래의 가치를 살림으로써 노조의 건강성을 높여 기존 노조운동을 재활성화하는 계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운동의 의제를 사회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유력한 모멘텀이라 하겠다.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인 ISO26000의 프레임에서 비롯된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소비자 보호, 공정운영, 지역사회 참여라는 일곱 가지가 유에스아르의 핵심 주제가 되면서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매개 지점이 만들어졌다.

인권·환경 등 7가지가 핵심 주제
그간 시민단체들의 ‘기업감시운동’은 1차 이해당사자인 노동자의 참여 없이 외롭게 진행되어 왔다. ‘사회적 책임’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추구해야 할 공적 가치로서 함께 공유하는 언어인 셈이다. 노조는 유에스아르를 노조의 활동전략에 포함시킴으로써 단체교섭 활동을 보완할 수 있다. 기존의 단체교섭 활동으로 보장되지 않았던 ‘생산 사슬 및 하도급 관계’, ‘지역사회’ 등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에스아르는 노조를 둘러싼 상황 변화와 이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의제로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노조가 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통해 노사단체협약에 사회적 책임을 담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단체협약에도 사회적 책임 담아내야
‘힘’은 양으로도 측정하지만, 질적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질적인 구분은 바로 ‘액티브’(능동)와 ‘리액티브’(반동)에 있다. 리액티브는 나에게 가해진 어떤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내면 되반응하는 감정으로서 나 역시 화를 내는 것이다. 이것이 깊어지면 원한이 되고 ‘복수는 나의 힘’이 된다.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에서 재앙신이 된 멧돼지의 원한이 주인공 아시타카의 오른팔에 새겨진다. 원한의 상처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열 사람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던 문을 총상을 입은 몸으로 혼자 밀어낸다. 하지만 그 힘을 쓸수록 상처의 원한은 자신을 잠식해 오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반면, ‘힘’의 액티브적 속성은 이유를 가지고 내가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하는 행동’이다. 노동운동의 저항정신은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담당해 왔다.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전통적인 경제이슈만으론 노동운동의 이해를 결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조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제를 통해 사회적 시민권의 힘을 확대해가길 기대한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


‘노조의 사회적 책임’ 이렇게 본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사회 흐름이다. 대기업, 산별노조, 정부기관 등의 노동 전문가들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원-지역사회-해외사업장
노조 이해관계자 범위 넓혀야

엘지전자 노동조합은 2010년 국내 기업 최초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 원칙을 선포하고, 노조의 이해관계자를 조합원-지역사회-글로벌 커뮤니티로 확대하여 노조활동에 대한 인식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배상호 엘지전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엘지전자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기존의 이해관계자인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 및 단체, 해외 사업장의 글로벌 커뮤니티에 이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엘지전자 노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노조는 생산 및 품질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활용해 서울의 재활용 사회적기업인 ‘에코시티서울’의 생산라인을 개선하고 사업장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에코시티서울은 폐가전, 폐휴대폰을 수거·분해하는 자원순환센터를 운영하는데 엘지전자 노조의 도움으로 생산성이 일년 전보다 40% 높아졌다고 한다.

또 엘지전자 노동조합은 올해 브라질을 시작으로 폴란드, 베트남 등 세계 15개국의 해외 법인 노조를 초청하거나 방문해 노조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와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배 위원장은 “노조의 사회책임 활동은 조직으로 봐서는 조합원의 단합을 이끌어내고, 나라 전체로 봐서는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회사·사회서 받은 것 돌려줘야
경영 못 미치는 현장은 노조가

유한양행은 ‘3무 경영’, 즉 적자, 파업, 오너가 없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한양행 노조는 1975년 창립 이후 노사 무분규의 전통을 지키며, 2010년 노사문화 우수기업, 2011년 일터혁신 우수기업 대상을 받았다.

박광진 유한양행 노동조합 지도위원은 “유한양행 노조 조합원들은 회사와 사회에서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해오던 것을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 노조의 사회책임 방향”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 노동조합은 자발적으로 하청업체들을 배려하는 사회책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식을 제공하는 외주업체의 계약금 인상에 발 벗고 나선다든가, 잔반 줄이기 운동을 통해 그들의 수익 향상을 꾀함으로써 유한양행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외주업체 직원들을 매년 노동조합 대의원 회의에 초청해, 경비, 통근버스, 청소 등의 부문별 우수 직원들에게 상을 주고 외식권을 지급하고 있다.

이밖에도 90년대 말 경제위기 때에는 조합원 스스로 의견을 내어 회사의 소모성 경비를 10% 절감하자는 플러스10 운동, 10분 일찍 출근, 30분 일 더하기 운동을 진행했다. 박 지도위원은 “비 올 때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어려울 때 경영진과 노조가 회사를 위해 힘을 합침으로써, 협력적 노사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외주업체 및 협력업체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사회활동을 강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가치에 맞는 역할 다해야
노동·보건의료 비중 동일하게

전국 165개의 지부 및 지회를 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국내 의료계의 가장 큰 산별노조이자 국내 최초의 산별노조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조의 기본 가치와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그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특징은 노동과 보건의료 이슈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다. 고용, 임금 문제와 같은 노동 이슈 해결과 환자들의 안전과 의료 수준 향상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실제로 2007년 산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임금의 1.8%를 양보해서 200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같은 시기 일부 기업들이 어려운 경영 사정을 빌미로 많은 수의 비정규직을 해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규직 노조가 스스로 양보해서 산별 합의를 도출하고, 수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것은 대기업 근무자와 중소기업 근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타개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 단장은 “보건의료 노동조합의 지향점은 산별노조의 이름으로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복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의료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ISO26000 보급, 보호자 없는 병원을 위한 간호간병 서비스 도입 등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개선 운동을 확대해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고립은 조합에도 손해
비조합원·소비자·지역과 연대

노사발전재단은 2006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통해 설립된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노사 관계 증진, 노사가 주도하는 사업의 활성화 등을 목표로 다양한 노사 관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호창 노사발전재단 수석연구원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연대’라는 노조의 핵심 가치에서 발전된 것”이라며 “기존의 노조가 조합원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했다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란 프레임워크에서는 노조를 둘러싼 비조합원, 소비자, 지역사회와 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기존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일부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서 이 연구원은 “어떠한 조직도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면 자기 이익을 주장하고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노조의 사회책임에 대한 요구는 피할 수 없는 사회 흐름이기에, 노조 본연의 가치를 확장해 노조운동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인식을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노동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내 노조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 박은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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